김영아 아주대 인권센터 학생상담소 상담원

김영아 아주대 인권센터 학생상담소 상담원
김영아 아주대 인권센터 학생상담소 상담원

치열한 수강신청 기간이 끝이 났다. 생각했던 1학기 수업시간표가 있었지만 100% 모두 그대로 이루기는 쉽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광속으로 ‘클릭’을 해야 시간표를 딱딱 맞출 수 있을까. 이럴 땐 꼭 나만 꼬이는 것 같아 짜증이 난다. 주변에 카톡을 넣어본다. 수강신청은 성공했는지 묻는다. 망했다는 답이 온다. 키득, 안심이 되는 웃음도 난다. 이런 것에 웃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 아직 개학 전. 첫 시작부터 의욕이 확 떨어지고, 수업을 가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미 별로일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찝찝한 마음으로 시작한 개강 준비와 웅크린 채 지나간 겨울방학 후, 돌아오는 3월의 대학생활에 기대가 가득 찬 학생은 몇 %나 될까. 나는 대학 때 다양한 경험이 하고 싶어서 복수전공을 하고 교직이수를 했다. 아니, 뭐라도 더 해놔야 할 것 같은 부담감으로 욕심을 부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많았고, 때로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 나는 교양 수업만큼은 원하는 강좌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선호하는 주제의 수업은 주변 친구들이 선호하는 수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공강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주로 혼자 있음을 견뎌야 했다. 듣는 수업에는 만족했지만 막상 외로웠다. 나는 내 생활에 만족했던 것일까? 외로운 삶을 살았던 것일까?

당시에 나는 만족과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한 문장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학과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혼자 심심하겠다” “점심은 누구랑 먹어?”라고 지나가는 말이 오가면, 그런 일 따윈 내게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게 뭐 대수냐고 괜찮은 척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괜스레 자존심이 상했다. 더욱이 점심을 매번 사먹어야 하는 경제적 여유 또한 없었기 때문에 비교도 되는 것 같았다. 방학이 돼 미뤄둔 게으름과 나태함이 번갈아 왔다 가면 3월의 새 학기는 매번 낯설고, 어색하고, 외로웠다. 그런 날이 많아지면 이렇게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한 학기를 몇 % 만족하고 보낸 것일까.

이처럼 기운이 빠지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 우리는 흔히 무기력이라는 친구와 마주하게 된다. 무기력은 내가 무엇을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내 삶이 즐겁지도 않다고 느낄 때, 불쑥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를 잡고 얼마간 나가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라는 저서에서 무기력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감탄, 집중, 갈등과 긴장 받아들이기, 매일 새롭게 태어나기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감탄은 세상의 일에 놀라고 당황하고 감탄하는 능력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다. 집중은 우리가 과거나 미래를 위해 늘 분주하게 살며 막상 한 가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데, 과거나 미래에는 없는 실제 경험으로의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갈등과 긴장 받아들이기는 회피하지 않고, 양극단에서 나오는 갈등과 긴장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매일 새롭게 태어나기는 모든 안전과 착각을 포기할 용기와 믿음을 가지는 일이다.

그럼 나는 오늘 하루 몇 % 무기력했을까, 생각보다 많았을까, 적었을까. 그저 하루에 20%에 불과한 무기력과 친해져서 허락 없이 불쑥 찾아온 친구에게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지는 않았을까. 스르륵 방문을 열어 보자. 이제는 어서 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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