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 본지 논설위원/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이번에 새로 취임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시흥캠퍼스 조성반대 점거 농성을 벌인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항소심을 취하하기로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언뜻 들으면 대학 공동체의 화합과 발전을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도대체 교수와 학생 간에 얼마나 소통이 되지 않기에 다른 일도 아닌 캠퍼스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대학에서 대학 구성원들 간의 소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다양한 소셜 미디어와 모임 등을 통해 학생과 교수는 서로 소통하며, 생각을 나눈다. 구성원 대표가 참여하는 평의원회가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등록금 책정도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 당국과 학생 대표, 그리고 제3자까지 참여해 결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마디로 대학 공동체에서 소통은 가장 일상화된 조직운영 원리이자 생활 규범이다.

그러나 서울대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대학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소통과정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아 보인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은 대학 내 소통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하버마스는 이 세계를 합리적 토론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한 ‘생활세계’와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가 조정되는 ‘체계’로 구분했다. 그리고 근대사회에서는 도구적 합리성이 강조되며 ‘체계’의 영역이 확장됐고 그 영향으로 윤리적, 일상적 생활세계가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체계의 과도한 도구적 합리성 추구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며 이로 인해 생활세계가 식민화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 우리 대학의 소통 문제는 대학의 사회적 위기에서 크게 기인한다. 학생들은 대학 입학을 위해 수년간 노력을 했지만 AI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시장과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생활비에 불안해하고 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어렵게 공부해 교수가 됐지만 비인기학과 교수는 구조조정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학령인구가 줄어듦에 따라 어떤 교수에게는 학생 모집이 논문 한 편 쓰는 것보다 더욱 시급한 과제가 돼버렸다. 하버마스의 생각을 빌리자면 교수와 학생은 수업을 통해, 면담을 통해 합리적 의사소통 행위를 할 수 있는 여건에 위치한 사회적 주체들이지만 이들을 둘러싼 체계는 생활세계의 일상적 실천을 위협하고 있다. 즉 대학 내 생활세계가 사회적 병리에 의해 식민화 돼가고 있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여성·평화 운동 같은 신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제 우리 대학도 신사회운동과 같이 합리적 의사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무엇보다도 체계의 병리와 기능 상실에 우리 대학이 위기에 놓여 있음을 교수와 학생이 모두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학생에게, 교수에게 모두 대학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해주는 동아줄이 될 수 없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 학위의 수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협업해 새로운 문화와 사고 체계를 형성하는 근원이 돼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의 창조적 개편이 필수다. 교수가 앞에서 무언가를 전달하는 강의가 주인 지금의 대학교육에서 합리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교수가 학생의 옆에 앉아서 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teacher가 아닌 helper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문제를 함께 정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학생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학생의 실패에 공감하고 선생이 아닌 동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성원의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학생과 교수가 서로 쳐다보는 게 아니라 함께 미래를 바라보는 교육이 돼야 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자신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얘기만 하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공동의 문제를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할 때 비로소 생산적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미래형 대학 교육이 대학의 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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