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백형찬 교수.
백형찬 교수

지난 번 글에서 중세대학은 학교 경영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학생의 대학’과 ‘교수의 대학’으로 나뉜다고 했다. 이번 글에서는 ‘유니버시티’와 ‘칼리지’의 본래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현재 유니버시티는 종합대학, 칼리지는 단과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바른 의미일까?

중세대학은 교황이나 황제로부터 대학헌장을 수여받으면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인정받았다. ‘스투디움 게네랄레’는 나라와 민족, 지역을 막론하고 ‘누구나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따라서 스투디움 게네랄레는 장소로서 대학을 의미한다. 프랑스 파리 대학,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은 대학헌장을 받은 대학들로 ‘스투디움 게네랄레’라고 불렀다. 유니버시티(university)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우니벨시타스(universitas)는 라틴어로 ‘하나’를 뜻하는 우눔(unum)과 ‘방향’을 뜻하는 베르토(verto)가 합쳐져서 생긴 말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를 뜻했다. 그 후 우니벨시타스는 대학의 제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됐다. 따라서 유니버시티는 장소로서의 스투디움 게네랄레와 제도로서의 우니벨시타스를 포함하고 있는 말로 ‘학생과 교수 공동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많은 학생들이 중세대학으로 모여들었고, 수많은 교수들이 곳곳에서 신학, 의학, 법학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대학헌장을 소유한 대학을 졸업하면 어디서나 가르칠 수 있는 교수면허장을 받았다. 점점 졸업생수가 증가하자 이들은 중세 사회의 세력이 됐다. 세력이 점차 커지자 교황을 비롯해서 황제 그리고 도시 당국과 싸우며 대학의 자치와 특권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중세대학은 하나의 국가와 같았으며 교수나 학생은 대학의 국민이었다.

칼리지(college)의 본래 뜻은 콜레기움(collegium)으로 ‘사람 중심의 협동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대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칼리지’라는 말에는 ‘공부하고 먹고 자는 곳’ 즉, 학사(學舍)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중세 대학 초기에는 일정한 건물에서 교육을 한 것이 아니라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가르치고 배웠다. 따라서 칼리지 제도는 획기적이었다. 학생들은 칼리지 제도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지 않고 숙소에 기거하면서 안심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대학 초기 학생들은 외부세력과 늘 투쟁하며 자신들의 권익을 지켰다. 그래서 학생들은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칼리지 제도가 학생들을 온순하게 만들어 면학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칼리지 제도는 원래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지만 영국에서 그 꽃을 피웠다. 대학 초기에 학생들은 사생활에 대해 전혀 간섭 받지 않았다. 파리라는 화려한 도시는 젊은 학생들을 유혹했다. 학생들은 번화한 도시에 살면서 향락적이며, 퇴폐적인 생활을 했다. 폭력과 도둑질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주로 기거하는 곳은 하숙비가 싼 하류계층의 집이었다. 그곳에서 갖가지 악습을 배우곤 했다. 그러므로 학생들의 도덕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공동 숙소가 필요했다. 칼리지는 대개 독지가의 기부로 건축됐다. 기부자는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 또는 은인과 사망자의 명복을 위해서 기부했다. 가장 오래된 칼리지는 성지순례에서 돌아온 한 영국인이 18명의 학생을 위해 방 한 칸을 사서 기부한 ‘18인 칼리지’이다. 후에 칼리지는 발전을 거듭해 옥스퍼드의 머튼 칼리지, 파리의 소르본느 칼리지 등 대학사에서 찬란히 빛나는 칼리지를 만들어냈다.

본래 칼리지 제도는 중세 수도원 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칼리지는 학생을 수도자로 간주했기에 사칙은 매우 엄격했다. 칼리지의 시간표는 ‘4시 기상, 5시 첫 공부, 6시 아침 식사, 10시 토론과 논의, 11시 점심 식사, 12시 오전 과제 질의, 14시 휴식, 15시 오후 수업, 17시 토론과 논의, 18시 저녁 식사, 19시 30분 저녁 기도, 20시 취침’ 등으로 철저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유니버시티는 학생과 교수의 공동체로서 장소와 제도를 뜻하는 말이고, 칼리지는 중세 수도원처럼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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