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사이버대 관광레저항공경영학과 교수

지우펀, 찻집
지우펀, 찻집

1963년 1월 16일 김찬삼 교수님은 부산에서 출항한 포항호 화물선을 타고 홍콩으로 수출가는 수백 마리 돼지들과 함께 4일 만에 자유중국 기륭 항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일본어에 능통한 대만인들에게 놀랐고, 늘씬한 중국 여인에 반한듯하고 타이베이에 대한 여러 관광지를 소개했다.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여면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오래된 해외여행 기록 속에서만 존재했던 대만(臺灣)! Taiwan, 자유중국을 실로 30여년 만에 다시 방문했다. 3가지 명칭처럼 다채로운 이 나라의 매력을 콕 집어 찾아낸 이가 나영석 PD다. TvN의 ‘꽃보다 할배’ 방영 이후 온갖 방송국의 여행 프로그램을 도배했던 타이완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해외 관광지가 돼 다시 돌아왔다. 타이베이 타오위안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과거의 타이완은 사라지고 어! 여기가 일본인가? 이게 실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 나라의 인상이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기 위해 자유중국을 배신했다. 금싸라기 같은 명동의 청나라공관 터에 있던 자유중국 대사관에서 쫓겨나듯이 떠났던 우리의 오랜 친구의 모습은 바뀌어있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만의 독특한 지역성
대만이 홍콩의 자유로움과 중화(中華)의 자존심 그리고 일본의 실용주의가 겹쳐 있는 곳이 된 배경에는 여러 설이 있다.지리학의 학문적 목적은 그 지역이 다른 지역과 차이가 나게 하는(Differentiation)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인 지역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지역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그 지역의 민족들이 오랜 세월 동안 지형, 기후, 식생, 토양의 자연지리적 구성요소와 그 자연환경에 최적화된 농업, 상업 등의 경제활동, 그것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연스럽게 체득되고 수준 높은 삶의 양식으로 정착된 문화적 요소, 주변 국가와 이민족들과의 투쟁과 동화된 민족성 등이 지역에 누적된 사물과 현상(사상, 事象)의 결과물이다. 타이완은 장개석의 정치적 유산의 결과물이라고도 한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손문의 밑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그는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완전히 패퇴했다. 1949년 12월 대만섬으로 국민당 정부를 옮긴 후 심기일전해 본토를 수복하고자 했던 노정치인의 꿈은 1975년 4월 5일 사망함으로써 접어야 했다. 그러했던 대만이 일본풍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의 배경은 장개석 총통의 일본에서의 육군사관학교 교육,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대만 지배 식민정책의 온건함, 세계 각국에 의한 대만의 외교적 고립 시 일본의 우호적인 태도,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지진과 화산활동에 적응하기 위한 벤치마킹 국가로 일본이 그들의 상황에 적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계 선진국 반열에 있는 섬나라 일본을 대만도 닮고 싶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온갖 신들을 모시고 있는 타이베이 용산사에 가면 일본 신사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동질감도 있다. 대만섬은 남북 400㎞, 동서 144㎞, 3000m 험준 고봉들과 북회귀선이 통과해 아열대와 온대기후의 점이지대로 사계절이 있고, 온갖 과일이 풍성하고 바다가 있어, 다채로움이 펼쳐진 Putong Putong(두근두근) Taiwan이라는 독특한 지역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타이베이, 용산사
타이베이, 용산사

중국과 자유중국의 현대사
중국과 자유중국의 현대사를 논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는 인물은 손문과 장개석, 모택동 그리고 송씨가문의 세 딸들이다. 세 자매는 일찍이 10대에 미 명문 웨슬리대를 유학해 서구사상을 맛보았다. 그들의 운명은 지금의 China와 Taiwan으로 갈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녀들의 인생도 중국 현대사의 격변기만큼 극적이다. 큰딸 송애령은 공상휘와 결혼해 중국 최대의 거부가 됐고, 송경령은 부친의 친구이며 정치적인 동지이자 이미 부인이 있는 49살의 손문과 22살에 결혼해 중화민국을 건국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나중에 중국의 국가부주석에까지 오른다. 송미령 또한 이미 결혼한 장개석과 결혼해 대만섬이 자유중국으로 되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외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각각 돈과 조국과 권력을 향해 나아간 그녀들의 인생행로가 지금의 중국과 자유중국으로 분리되는 두 국가의 운명과 겹치는 영화와 같은 인생행로였던 것이다.

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관
장개석은 중국 황실이 몰락하고 1931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으로 중국의 7000년 역사의 유물들이 더 이상 피난을 다니다가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에 결국 1948년 대만 섬으로 옮기기로 한다. 국민당의 패배를 예측했는지 자금성에 있던 보물 60만 점 중 운반이 가능한 20만 점의 보물을 선별해 수십 척의 군함을 동원해 대만의 양명산 깊은 수장고에 보관해 지금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중화의 걸작품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그 넓은 고궁박물관의 중국 최고의 보물 70만 점을 1~2일 만에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딱 3개만 추천한다면 상아구(象牙球), 비취로 조각한 배추인 취옥백채(翠玉白菜), 천연자연석을 동파육과 똑같게 조각한 육형석(肉刑石)을 들 수 있다. 중국은 아직도 자신들의 보물을 약탈당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대인의 마음으로 중국의 지방정부인 대만이 잘 보관하고 있어 언젠가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야류(野流) 지질공원
대만의 관광자원은 무궁무진하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자연적 자원은 야류와 태로각을 들 수 있다. 타이베이 북동부 해안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야류(野流) Geopark(지질공원)는 유네스코가 자연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보존 가치가 있고 그 오묘함은 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 네페르티티 여왕 머리라는 현무암이 응고된 지층 위에 사암의 차별침식으로 형성됐고, 여인의 아름다운 젖가슴 같은 돌출암석은 바닷물의 오묘한 어루만짐에 의한 것이다. 곧 없어질 거라는 엄포에 수많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지만 30여 년 전의 모습과 별다른 변화가 없는 걸로 보아 풍화보다 사람들의 등쌀에 잘 견디어 주길 바란다.

지우펀가 스펀(十分)
지우펀과 스펀은 관광지 개발과 관광상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전문가들이 반하는 곳이다. 해발고도 400~500m 산 중턱 마을이었던 지우펀은 원래 9가구 거주하던, 9인분이란 뜻이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이 산 아래 마을로 내려오면 9인분씩의 식량을 지고 올라갔다 해서 부르는 지명으로 그만큼 오지였다. 1920~1930년대 먹고 살기 위해 탄광에서 일해야 해던 마을 사람들은 탄광산업이 쇠퇴하면서 몰락했다. 그런데 1989년 비정성시(非情城市), 일본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지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아주 사소하지만 현대인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공간을 창조해 타이베이 여행의 대표적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해 질 녘 홍등이 켜지는 언덕 위 찻집과 수치루 내리막 계단 그리고 골목길의 깜찍한 기념품 가게, 땅콩 아이스크림, 취두부 등이 눈과 입을 호강시키는 매력적인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단 여름철 주말에는 절대 방문하지 말 것을 권장한다. 이곳을 지옥펀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련의 연자구
화련의 연자구

스펀(十分)은 소원을 적어 천등(天燈)을 날리는 핑시선 기차가 서는 조그만 기차마을이다. 이곳 또한 석탄산업이 폐광되면서 다른 지역을 모방해서 시작했는데 기찻길의 분위기와 습기가 많아 산불이 방지돼 이곳에서는 얼마든지 천등을 날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타이완 중동부 해안지역에 있는 화련시에 인근의 해발고도 2000m에 위치한 태로각(太魯閣) 계곡은 20㎞에 이르는 거대하고 기묘한 대리석 협곡이다. 1950년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도로가 필요했던 장개석 총통의 지시로 5000명이 넘는 인원이 망치와 정으로만 단단한 대리석 암벽에 도로와 터널을 뚫기 위해 동원됐고 필연적으로 26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장춘사라는 사찰은 태로각 최고의 절경 옆에 서 있다. 특히, 제비집처럼 계곡절벽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사이로 에메랄드빛 계곡이 펼쳐져 있는 연자구(燕子九) 계곡은 하천의 하방침식과 계류수와 암석이 회오리치는 마찰 침식의 작용으로 형성된 포트 홀(Pothole, 돌개 구멍)의 기기묘묘함에 경탄하는 곳이기도 하다.

화련역 앞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 선생님이 들렀던 노점 과일가게는 한국 관광객들의 성지가 됐고, 야시장의 망고 빙수는 반드시 맛보아야 하는 인생 간식이 됐으며, 파인애플 잼 과자 펑리수는 귀국선물 필수품이 돼버린 대만은 그동안 ‘중국어를 하는 일본사람’이 돼 버렸지만 다시 찾은 그리운 추억의 오래된 친구인 것이다.

태로각, 장춘사
태로각, 장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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