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일 자동차 정비 제1호 명장, 카123텍 대표
앞선 기술 익히고 업계 1인자 '우뚝'..."언어 익히고 해외 신기술 공부해야"
전문대 필요한 교육은 '실무 중심, 사례 중심 교육'
"자동차 정비는 한 가족의 생명 책임지는 일"

박병일 카123텍 대표(사진)은 제1호 자동차 정비 명장에 올랐다. 그는 "의사는 한 사람을 고치지만, 정비사는 한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다. 작은 부품을 다룰 때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일 카123텍 대표(사진)은 제1호 자동차 정비 명장에 올랐다. 그는 "의사는 한 사람을 고치지만, 정비사는 한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다. 작은 부품을 다룰 때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전문기술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명장’. 박병일 ‘카123텍’ 대표는 2002년 자동차 정비 분야에서 최초로 명장에 오른 주인공이다. 1999년, 세계 최초로 자동차 급발진 원인을 분석하는 데 성공하며 실력을 알렸고, 이외에도 자동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원인을 찾아내는 등 활약했다.

현실적인 이유로 정비의 길에 들어섰지만, 자동차의 문제를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 고치는 일은 그의 기질과 많이 닮았다. 장애물이 있으면 해결 방법을 찾는 성격은 그가 명장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포기하지 않는 태도의 원동력은 1인자가 되겠다는 목표였다.

이제는 정비 분야의 알려진 베테랑이 됐지만, 정작 박병일 명장은 ‘지금도 현장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기술은 날로 새로워지고 보는 이에 따라 진단이나 문제 해결의 방법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 자동차 정비 분야의 ‘1인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계기는.
“14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버스회사에 취직해 정비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원래 꿈은 화가였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버스회사에 취직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도 모르고 거친 현장 분위기에 적응을 못했다. 일한 지 3개월쯤 됐을까, 작업반장이 나를 오일창고로 데리고 갔다. 불을 끄더니 냄새로 다양한 종류의 미션오일과 워셔액들을 구분하라고 했다. 모른다고 하니 오일을 손에 찍어 입에 넣어줬다. 맛을 봐도 몰랐다. 반장이 ‘내가 기름밥 28년 먹는 동안 너 같은 놈은 처음 봤다, 넌 기술자 못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집에 갈 수도 없었다. 침울한 마음으로 돌아다니다, 우연히 방구석에 있던 링컨 전기를 보게 됐다. ‘꿈은 버리지 않으면 얻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능한 건 나에게도 가능하다’는 그의 연설문이 크게 와 닿았다. ‘이 사람도 대통령이 되기까지 30년 걸렸다는데, 나도 30년 안에 이 바닥에서 1등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무작정 자동차 정비 책을 찾아 읽고, 그 책을 쓴 공고 교사를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하며 정비를 배웠다.”

- 자동차 정비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자동차정비기능사 1급 자격증을 따고 나서, 1급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과 한달에 한 번 기술토론을 했다. 그 중에 독일을 다녀온 친구가 있었는데, 한 책을 보여줬다. 앞으로 자동차에 전자 기술이 합쳐진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당시가 1982년도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전자학원을 다니면서 TV 고치는 법이나 회로도 보는 법을 배웠다. 친구들이 미쳤다고 했고, 그런 시대가 오려면 멀었다고 했지만 배웠다. 그러다 어느 날 대우자동차에서 전자 제어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를 출시했다. 말로만 듣던 시대는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미 3년간 전자 기술을 배웠던 나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자동차 정비와 전자 기술, 두 가지를 모두 할 줄 아는 이가 없었다. 나한테 기술을 가르쳐주던 사람들이 내게 기술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 산업의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한 것이 결국 분야에서 앞서가는 비결이었던 것인가.
“전자 기술 그 자체나,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기에 ‘내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멈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버리고, 한 달 동안 차를 고치면서 난이도 있는 정비 사례를 연구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정리해 자동차 전문 잡지에 기고했다. 그 글이 꽤 인기를 얻었고, 이름도 알려지게 됐다. 항상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고 또 연구해야 한다. 전문대 학생들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해외에서 발표되는 자동차 관련 연구 자료를 스스로 공부했으면 좋겠다. 자동차 기술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의 서적을 많이 찾아 읽고 공부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언어공부도 해야 하는데, 웬만한 이론서는 일본어로 번역이 돼 있으니 우선 일본어부터 공부하고, 영어도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 명장만의 정비 노하우가 궁금하다.
“몇 가지 이야기해보면, 엔진이 깨끗한지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오일 캡을 보면 된다. 뚜껑 안쪽의 얼룩이 노란 빛일수록 상태가 양호한 것이고, 어두운 갈색에서 검정에 가까워질수록 좋지 않은 것이다. 이것만 알면 누구나 쉽게 엔진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엔진이 뜨겁지 않을수록 좋고 엔진 머플러에 손을 가져다 대 봤을 때 습기가 느껴지면 연비가 좋은 차다. 이런 식으로 사례를 중심으로 일종의 진단, 정비 매뉴얼을 만들었다. 내가 일종의 정비 데이터를 만든 거다. 과거 정비는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들으며 문제를 파악했다. 1차원, 2차원 방식이다. 데이터를 통한 정비는 3차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도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비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4차원 정비라고 부른다. 가전제품도 제조사별로 장단점이 다르듯, 자동차도 그렇다. 제조사 별, 부품 특징 별로 데이터를 만들고 사례를 중심으로 데이터를 만든다. 이것을 통해 엔진 상태, 타이어 상태, 연비 효율과 같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정비 사례 중심의 진단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렇게 하면 문제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자동차 정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 회사 정비사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볼트 하나, 핀 하나에 자동차의 수명이 달렸다. 작은 부품에 소홀히 하면 생명을 잃게 된다. 의사는 한 사람을 고치지만, 정비사는 한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니 작은 부품을 다룰 때도 신중해야 한다.’ 정말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데도 노하우가 있다. 볼트의 모양과 재질은 다양하다. 그럼 각각의 종류의 볼트와 또 각각의 종류의 너트를 조립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재질로만 따져도 강철로 된 볼트와 알루미늄 너트, 강철 볼트와 강철 너트, 알루미늄 볼트와 강철 너트라는 조합의 숫자가 나온다. 각각의 상황에 필요한 노하우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기술이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볼트와 너트를 잘못 조이면 부러질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미숙련 기술자가 흔히 하는 실수다. 그러나 볼트를 하나 부러트린 일이 엔진에 중요한 결함을 일으키기도 한다. 심각할 경우 엔진을 다 갈아야 할 수도 있다.”

- 42년간 자동차 정비 분야에서 일했다. 그간의 소회를 되돌아본다면.
“인간의 능력은 스스로 한계를 긋지 않으면 무한대로 발휘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았다. 다들 안 된다고, 무리라고 했던 일에 도전하면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보통 행복하기 위해 성공하려고 하잖나. 사람들은 성공해야 행복하다 생각한다. 나는 ‘내가 행복하면 성공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물도 절벽을 만나야 폭포가 된다고 한다. 나도 어려운 일을 겪으며 오히려 성장했다. 쉽게 공부해 쉽게 자격증을 따고, 좋은 곳에 취업해 순탄한 인생을 살았다면 명장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절망이 오면 힘들어하지만 그 그릇에 맞게 또 다른 물길이 주어진다. 나도 이 진리를 나이 50에야 알았다. 또 다른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시련이 온다고 생각하면 어려움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은 어떤 어려움이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이젠 내가 가진 것을 다 잃는다 하더라도 두려울 게 없다.”

- 전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1999년에 급발진을 제어하는 데 성공하고 방송에 많이 출연했다. 갑자기 급발진 전문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연구하면서, 학벌은 좋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산업포장도 받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후학 양성에는 별로 힘을 쏟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 대학에서도 겸임교수 제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몇 년간 신성대학교 자동차과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국민대 대학원에 출강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실무사례를 중심으로 가르쳤다. 실제로 사용된 부품도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베어링에 대해 알려준다고 하면, 각각 다른 모양으로 마모된 여러 개의 베어링을 가져다 보여주고, 마모된 모양에 따라 원인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줬다. 전문대에서는 이론이나 공식보다 이런 실무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문대 교육에 더 많은 실무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실무를 가르칠 교수는 학벌, 학위를 따지기보다 실무에 강하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 명장의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한데, 하루 3시간 이상은 꼭 책을 읽는다. 공부는 꾸준히 ‘가랑비에 젖듯’ 해야지, 어느 날 갑자기 몰아서 공부하면 안 된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도 딱 거기까지다. 오히려 자격증을 딴 건 딴 것이고, 그야말로 자격을 얻은 것일 뿐이다. 그 때부터 더 공부해야 한다. 지금도 자동차 정비를 꾸준히 공부하는 이유다. 또 사고력을 길러야겠다 생각해서 인문학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다. 현장에서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들도 놓치지 않고 파악하려 한다. 작업지시서를 보고 궁금한 건 직원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명장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직원들이 더 잘 아는 경우가 있다. 또 내가 하는 방식이 100% 옳은 게 아닐 때도 있다. 직원들이 탁월한 응용력으로 더 나은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에게 배우고, 또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면서 기술을 공유한다. 지금도 나는 현장을 배우지,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때그때 기록해둔다. 강의에 활용하거나 책에 쓰기도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누가 내게 ‘어떤 명장이 되고 싶냐’고 묻더라. 그동안 목표했던 것을 이뤘으니 이제는 인간명장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렇게 대답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온 건 가족과 나를 위해 살아온 결과였다. 남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기계 명장, 자동차 명장은 될 수 있지만 거기까지다. 진짜 명장은 인간명장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을 책으로 쓰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어느 섬에 놀러갔을 때 겪은 일 때문이다. 그 섬에 작은 동네 슈퍼 하나가 없었다. 목이 마른데 물을 못 사먹고 있었다. 그 곳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께 겨우 물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그 할머니 댁에서 바가지로 물을 뜨는데 작은 쥐 두 마리가 방안에 있었다. ‘웬 쥐가 방안에 다니냐’고 여쭸더니, 그 할머니께서 아들이 안 와서 쥐구멍을 못 막았다고 하셨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섬에 다니며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한국마이스터연합회’ 회원들과 봉사활동을 다녔다. 그게 벌써 11년째다. 20~30명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은 이제 100명 단위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봉사활동에 드는 비용은 모두 회원들이 분담하고 있다. 자동차 정비, 농기계 수리, 미용, 장판, 도배, 가전수리, 빵 만들기 등 많은 일에 손을 보태고 있다.”

- 전문 기술을 배우고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지금 힘들다고 해서 자기 자신이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기 바란다. 또 다른 길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용기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용기는 세 가지다. 하나는 바로 시작하는 용기다. 나중에 하겠다는 마음은 안 된다. 또, 설령 노력한 일이 잘 안 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 용기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지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신을 탓한다. 그러나 자신을 탓하다보면 나락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용기를 갖고 꿈을 위해 달려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세 가지 용기와 꿈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박병일 명장은…
중학교 1학년이던 1969년 정비업계에 뛰어든 뒤 자동차정비기능사 1급 자격을 취득하고 자동차 정비 분야에서 실무 경력을 쌓았다. 1994년 한국폴리텍대학 자동차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 동국대 대학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 자동차 급발진을 재연하며 원인 분석에 성공했다. 2000년 카123텍을 설립했으며 2002년 대한민국 자동차정비 1호 명장으로 인정받았고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신성대학교에서 자동차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2005년 산업포장을, 2011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인천시 기능전기기술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 한국마이스터연합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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