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리학자 윤병국 교수와 함께하는 세계여행⑥ 일본, 가깝고도 먼 나라] 도시와 예술의 만남, 문화와 역사 보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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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국 경희사이버대 관광레저항공경영학과 교수
오타루 운하
오타루 운하

일본의 영토관, 도시재생

가깝고도 먼 나라. 이 문장이 일본하면 가장 떠오르는 문구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한반도와 끊임없는 은원(恩怨)의 관계로 2001년 아키히토 전 천황이 일황가의 뿌리가 한국인과 관련돼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히는 등 한반도와 일본 열도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한참 독도 문제가 이슈일 때 필자는 왜 일본 정부가 독도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배경으로 독도의 지정학적 위치, 독도 주변의 수산자원과 심해 지하자원 그리고 일본의 영토 주권을 지키려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강의하곤 했다. 그리고 최근 대마도를 답사하면서 조선왕조가 독도보다 가까운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편입하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그건 그 당시 조선의 관점에서 대마도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부산에서 49.5㎞, 규슈에서 82㎞로 일본 본토보다 지리적 거리가 당연히 가깝고 대마도의 한국 전망대에서 한국 휴대폰이 연결되는 해프닝도 발생할 만큼 한국과 가까운 곳이다. 대마도는 검푸른 바다와 산이 높아 나무밖에 없고 농사지을 땅이라고는 해변가에 조금밖에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조선으로서는 가치 없는 땅이기에 일본 막부가 조선과의 교역과 심부름꾼을 하면서 생존하는 것을 묵인했다. 그런데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제국주의화 하면서 중국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고자 한반도 식민지배를 계기로 그 당시까지 자국의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던 독도를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북방 5개 섬을 러시아에 빼앗긴 것에 대한 성동격서와 적반하장 수법이다.

대마도와 조선의 마지막 인연은 대마도주인 쇼 다케유키(쓰시마 번의 37대 당주이고, 도쿄대 출신으로 영문학자이자 교수)와 비운의 덕혜옹주가 정략결혼한 것이다. 이마저도 파경을 맞아 끝나는 듯했으나 부산과 대마도 히타카츠항까지 1시간 10분이면 닿게 되는 쾌속선의 취항으로 일본 본토 관광객보다 더 많은 한국 관광객들의 대마도 1박 2일, 20만원대 투어로 부활하고 있다.

이런 일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점이 몇 가지 있다. 우리보다 앞섰던 선진문물기반 도시건설과정에서 낙후되고 기능을 상실한 도시와 건물에 활력을 불어넣는 재활성화, 재생, 재개발(Rejuvenation, Regeneration, Redevelopment) 등의 사업이다. 일본 요코하마항의 미나토 미라이 21은 오래돼 기능이 떨어진 항구를 개조해 변신에 성공했다.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영국 템스강의 도크랜드 개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과 함께 필수적으로 벤치마킹하는 대상지 중 하나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요코하마항 개발로 인해 가스등이 깜박거리던 근대일본 문화의 정취는 사라져버렸고, 후쿠오카 텐진지구의 캐널시티는 쇼핑타운이 돼버린 상황에서 북해도의 오타루 운하와 시코쿠 나오시마의 예술의 섬은 매력적인 곳이 됐다. 이 두 도시가 관광지리학자의 눈에 매력적으로 보인 이유는 그 관광개발의 편익이 주민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관광지 개발의 목표는 지역주민의 만족과 행복에 있다. 서울의 북촌과 익선동, 부산의 감천마을, 전주 한옥마을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 과잉관광(Overtourism)에 몸살을 앓고 있고, 안동 하회마을의 고택들은 문을 굳게 잠그고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사생활 침해를 불쾌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사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대마도 한국전망소
대마도 한국전망소

오타루, 일본 근대화의 상징

오타루시는 홋카이도에 있는 인구 12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연간 관광객이 약 1000만 명에 달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역사 관광지다. 이 도시는 1869년 홋카이도 중심도시인 삿포로의 관문도시로서 물류유통의 중심지이자 금융경제도시로 성장했다. 1880년 소라치(空知)지방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고, 1889년 국제무역항으로 지정돼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1923년 완성된 오타루 운하와 거룻배의 하역작업, 석조창고가 즐비한 경관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홋카이도 내륙에 철도가 발달하면서 삿포로로 도시의 중추 기능이 이전되고, 항구로서의 기능이 쇠퇴함에 따라 지역경제는 쇠퇴하게 된다. 더불어 운하를 이용한 거룻배 하역도 오타루항의 부두 정비, 선박 대형화, 기계화 등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면서 1924년 383척에 달하던 거룻배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항만시설로서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운하에 도시폐수가 유입되고 악취가 풍기게 되고, 오타루 운하는 지역번영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동시에 도시의 쇠퇴를 실감하는 장소가 된다. 이후 오타루의 지자체에서 쇠퇴한 지역경제 분위기를 극복하고자 1960년대에 운하를 매립해 6차선 항만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오타루 운하의 영광과 향수를 지니고 있던 지역주민들 중심의 지역 NGO 단체와 갈등하면서 10년간의 운하보존운동이 시작된다. 치열한 갈등 끝에 일부 운하는 매립하고 그 나머지 구간을 민간중심으로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오타루의 항구와 운하라는 ‘전통적 자산’에다 새롭게 발굴한 ‘일본의 신문물을 도입한 개척정신’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새롭게 적용해 지역의 역사경관의 보존과 활용(창고를 포함한 운하경관의 정비, 겨울 이벤트 창조) 그리고 문화산업의 집적과 전통산업의 성장(유리공예와 오르골 전문점 입지)이라는 오타루의 지역성을 재구조화한 것이다.

오타루 운하와 주민
오타루 운하와 주민

나오시마(Naoshima, 直島),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가가와현의 ‘세토 나이 카이(Seto Inland Sea, 瀬戸内海)’에 위치한 14.22㎢의 아주 작은 섬으로 약 30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섬이다. 이 섬은 1917년 미쓰비시 광업(三菱鉱業)이 나오시마 제련소(直島製錬所)를 설치하면서 번영했지만, 이후 환경 공해 문제로 주민도 떠나고 버려진 섬이 됐다.

이 섬을 부활시킨 사람은 후쿠타케 출판사 회장과 나오시마 정(町)의 정장(mayor)인 치카쓰구 미야케(Chikatsugu Miyake)다. 두 사람의 의지가 결합돼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 죽어가는 섬을 살리는 원대한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1989년 교육그룹인 베네세 그룹(Benesse Corporation)과 일본을 대표하는 미니멀리즘의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Ando Tadao, 安藤忠雄)의 총괄 아래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참여해 세 방향의 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그 첫 방향은 1992년에 개관한 ‘베네세하우스 뮤지엄(Benesse House Museum)’과 1995년 7월 개관한 ‘베네세하우스 오발(Benesse House Oval)’동, 2006년에 개관한 ‘베네세하우스 파크/비치(Benesse House Park/Beach)’동을 집중적으로 바닷가에 배치해 뮤지엄 기능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 세계적 명소를 방문하고 그 작품들과 함께 숙박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당연히 호텔은 연중 풀 부킹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방향은 안도 본인의 건축 철학인 자연과 조화되는 건축 철학을 구현하는 공간으로서 지형을 활용해 언덕 정상부를 절단해 그 지중공간과 외부를 연결하는 빛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지추 미술관(Chichu Art Museum, 地中美術館, 2004)’, 바닷가에는 이우환 미술관(Lee Ufan Museum, 李禹煥美術館), 전통건축물을 활용한 안도 뮤지엄(ANDO Museum)을 개관하고 구사마 야요이(Kusama Yayoi, 草間彌生)의 설치 미술을 섬 곳곳에 펼치는 작업을 진행했다.

세 번째 방향이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 요인이기도 한데, 나오시마 혼무라(本村) 지구 주민들이 버리고 간 오래된 주택을 복원하는 ‘이에 프로젝트’를 진행해, 이 공간을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 공간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마을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에 대한 자긍심과 삶의 의미가 살아 나도록 했다. 이 세 방향의 프로젝트가 조화를 이루어 지금의 ‘예술의 섬’ 나오시마가 탄생한 것이다. 필자가 사전에 충분한 지식 없이 방문한 이우환 미술관은 바닷가에 덩그렇게 서 있는 거대한 암석과 알 수 없는 공간의 회백색 콘크리트였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안도의 건축 철학이 이우환 미술관을 나오시마 예술의 섬의 중요한 상징성이 되게 한 것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자신의 정신병적 소인을 예술로 승화시킨 구사마의 빨강, 노랑 호박은 삭막한 선착장과 바닷가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이우환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구사마 야오이의 호박
구사마 야오이의 호박

한국여행사의 일본 여행 상품으로도 출시되고, 건축과 미술 그리고 예술에 조예가 깊은 한국의 지성인들이 방문하는 이 나오시마 프로젝트와 오타루 운하의 성공 요인의 공통점은 우리가 관광개발 방식에서에서 표준 모델로 이야기하는 3섹터(지자체의 인허가, 지역주민의 토지, 외부기업의 자본)을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자체장의 적극적인 의지와 베네세 그룹인 외부기업의 지원, 그리고 지역주민의 지지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마을의 전통유산을 그대로 활용하고 외부관광객이 그 마을에 와서 전통과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고 주민들이 자신의 마을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의 오래되고 노쇠한 관광지역과 ‘관’ 주도형 관광지 개발에서 일본의 재생개발지는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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