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 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

한국원자력학회는 5월 21일 학회 50주년을 기념해 '극초저선량 방사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주제로 후쿠시마 방사능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매스컴에 의하면, 학회는 “사고로 인한 방사능의 전파 가능성을 사고 초기부터 잘 통제하고 있음에도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반원전 그룹과 일부 언론의 비과학적인 선전으로 많은 국민이 불필요한 방사능 공포에 빠져 있다“고 했다. 나아가서, 초청됐던 도쿄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학교 급식과 쌀, 수산물 등에 대한 방사능 조사를 시행한 결과 현재는 매우 안전한 상태에 도달했다”며 “사고 직후 약 1년간 주민에 대한 내부피폭 선량을 조사한 결과 후쿠시마 주민이 실제로 먹고 있는 식품의 오염도가 극히 낮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는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방사능에 조금이라도 오염된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은 정당한 권리인데, 이를 비과학적 ‘불필요한 방사선 공포’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후쿠시마 사태 2년 뒤인 2013년 한국원자력학회 후쿠시마위원회는 한 보고서에서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방출돼 대기토양해양을 광범위하게 오염시켰다. 심각한 토양 및 해양오염과 국가사회적 위기가 유발됐다”고 했다. 얼마나 치밀한 조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결론은 당연히 후쿠시마 지역의 농수산물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토록 하는 것으로 도쿄대 교수의 말과는 꽤 상충된 것으로 보인다. 시민네트워크의 주장도 결코 억지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이유다. 급기야 일반 시민들은 “원자력학회는 일본의 한 조직이 아닌가”라는 비난도 쏟아냈다. 이에 대해 학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본의 아니게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켰다. 방사선에 대한 과도한 반응으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국내 상황을 개선하고자 회견을 개최했다”고 해명했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후쿠시마 수산물의 안정성 여부를 따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학회와 시민 사이의 공방과정에서 눈에 뜨는 한 블로거의 글이 있었다. 그는 “한국원자력학회는 과거부터 자신들이 사실 혹은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국민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있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안전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 혹은 학회 자체의 생명유지와 증가”라며 학회를 “이익집단”이라 비난했다.

학자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문제와 더불어 과학 관련 사회적 문제에서 학계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한 글이다. 근래 우리 사회의 안전 문제에서 우리 학자들은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잃어왔는가? 이번 사태는 이 불신을 한층 더 강화시킨 듯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중요한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과학적이기 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판단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광우병 사태가 그 대표적 사례다. 가방끈이 길고 짧음에 무관하게 지극히 좁은 경험과 제한된 정보에 근거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과학적 정보를 다른 기사에 “너희들이 하는 얘기는 하나도 안 믿는다”는 식의 댓글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여기에 매스컴이 선동적으로 문제를 부풀리고, 정치와 행정 안일주의가 결부돼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 무시되기 때문에 커다란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것이 아니가?

필자가 연구년을 보내면서 본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 매스컴은 자국 학자들이 만든 과학정보를 매우 상세하게 소개하고 국민들은 이를 존중하고 생활에 도입한다. 우리는 왜 그렇지 않은가? 많은 이유가 있겠다. “근거에 기반해 주장하기”의 과학적 사고 배양이 어릴 때부터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하나의 이유다. 못지않게 큰 문제는 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과학적 의사결정의 중심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원자력학회의 보도자료를 보면, 학회는 처음부터 어떻게 해야 했었는지 알고 있었다. 자료 말미에 “국내 유관 학회와 함께 저선량 방사선 영향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국민께 알리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국민의 안녕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조사를 행하고 객관성과 진실성이 확보된 결과를 알리고자 하지 않았는가? 일본 학자를 포함해 초청된 몇 명 학자들이 기자들 앞에서 한 발표를 통해서 우리 국민의 과학적인 판단을 이끌기는커녕, 설득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가?

연구자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동료학자의 검증, 소위 peer review를 거치지 않은 것을 곧바로 매스컴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황우석 박사가 국민을 호도했던 방식이다. 하나의 연구결과는 그 자체로 바로 과학적 진실이 되지 않는다. 동료학자들의 긍정적, 부정적 비판, 즉 검증을 받는 과정을 통해서 팩트로 승화되고 이런 과정을 거쳐 정제된 정보만이 일반인들에게 보급돼야 한다. 황우석 박사의 사태가 그랬듯이, 이번 사태도 우리 학계와 학자들에게 많은 고민과 숙제를 안겨줬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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