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앞으로 15년 이내에 기존 직업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수개월 내 1만 5000여 명의 일자리를 날려버리는 상황이 펼쳐졌다.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정책 하나로 이를 가능하게 했다. 바로 강사법 얘기다.  

오는 8월부터 대학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이른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려한 대로 강사 대량해고가 현실화되고 있다. 강사법 시행 여파로 대학들은 행·재정 부담 급증을 호소하고 있고, 이는 다시 강사 구조조정과 실직 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강사법 시행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강사법이 시행되는 오는 2학기 이후에는 강의 수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학가에서 ‘강사학살’이나 ‘살생부’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분위기 탓이다. 

강사법 시행 부작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학교육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던 시간강사들의 대학 강의가 줄어들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밖에 없다. 강좌 수 축소와 강의 대형화로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문후속세대들이라고 불리는 강사들이 강의 기회마저 박탈될 경우 우리나라 교육 생태계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 

강사들의 대량해고 사태가 우려되자 교육부가 꺼내든 것은 대학평가 지표 카드다. 강사를 줄이면 재정지원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책으로 대응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차기 대학 기본역량진단(2021년 시행 예정)에 ‘강의 규모의 적절성’ 지표가 강화된다. 2018년 대학 기본역량진단에서는 강의 규모 적절성 지표가 총 75점(1단계 평가지표)에서 1점으로 반영됐다. 차기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지표는 올해 확정된다. 또한 대학·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 핵심 성과지표에 ‘총강좌 수’가, 세부지표에 ‘강사 담당학점’이 반영된다. 특히 교육부는 BK21 후속사업 선정평가에서도 강사·박사 후 연구원 강의 기회 제공과 고용 안정성을 반영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대학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부담에 대해 예산을 확보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통해 강사법 뒷수습을 한다고 하지만 대학들 입장에서 보면 연간 2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대학을 평가하겠다는 교육당국의 정책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든 대책이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재정압박 등으로 강사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대학 입장에서는 정부가 밀어붙이기만 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대학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내놓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어찌보면 강사 수를 유지하면서 강사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강사법의 취지는 좋으나 재원 마련을 두고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한 대학이 처한 상황에서 강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책의 기대효과만큼 현장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사법 시행으로 사립대가 추가 부담할 비용은 적게 잡아 1500억원이지만 교육부가 확보한 예산은 이번 2학기 방학 중 임금 지원분 288억원이 전부다. 추가적인 재정 지원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대학이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대학만 옥죄는 게 능사는 아니다. 재원 마련에 대한 특단의 대책은 물론 강사법 시행으로 인해 교육의 질 하락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보완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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