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

자연, 자유, 자치라고 요약되던가요. 아나키즘적인 삶에 대해 유독 관심이 커지는 요즘, 저의 걸음은 소박한 헌책방을 향해 갑니다. 최신 지식에 대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부득불 인터넷으로 신간 서적들을 살펴보긴 합니다만, 헌책방은 대개 주제를 정하지 않고 갑니다.

어떤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갈 때도 있긴 하지만, 그런 기대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불만은 없습니다. 헌책방은 그런 필요적 기대감보다는 더 큰 뜻밖의 행복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이 예찬해 왔지만, 헌책방은 정말이지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책으로 쌓인 공간인 건 매한가지인데, 생산과 창작에 몰입하도록 분위기를 잡아주는 연구실이나 서재 혹은 도서관 공간과는 다릅니다. 백색소음 속에서 이런저런 몽상과 메모, 아이디어로 채워주는 북까페와도 다릅니다.

헌책방에 주기적으로 가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좋은 책들이 나왔을 텐데 하는 조바심 비슷한 마음. 삶의 지혜를 속 시원하게 알려줄 제목 한 줄이, 한 줄의 목차가, 한 줄의 문장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가득해지기도 합니다.

출판단지 안에는 헌책방이 두 곳 있습니다. 하나는 북까페로 꾸며놓은 예쁜 헌책방입니다. 이곳은 이제는 제법 유명해져서 손님들이 꽤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곳은 예전처럼 아날로그적으로 책을 쌓아둔 고서 헌책방입니다. 그런데, 보이는 모습만 가지고 어느 곳이 더 낫다고 품평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곳 모두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쁜 헌책방은 커피와 함께 감성을 한 잔 들이키고 온 느낌이지만, 고서 헌책방은 고단한 인생에 지적 주유를 하고 온 느낌입니다.

헌책방이 책을 감각 있게 잘 배치해둔 중대형 서점의 효율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헌책방은 정리된 듯 정리되지 않은 적당한 무질서가 편안함을 줍니다. 의도된 베스트 셀러나 마케팅이 없어 의식의 흐름을 교란당할 일도 없습니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옆으로 옮겨가면서 꽂혀있는 책들을 쭉 살펴보는 것으로 즐거워집니다. 살짝 눈에 밟히는 책도 있고, 소장하고픈 욕구를 동반하는 책도 있습니다. 다른 손님이 먼저 와서 붙들고 있는 책에 더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아직 읽어 본 것도 아닌데 제목만으로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향력 있는 책도 있습니다.

같은 심상, 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고민한 작가, 저자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통합니다. 같은 이데아를 고민한 어느 선험적 연구자가 있다는 것이 방통할 따름입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같은 화두를 붙잡고 나름 후련한 해답도 내놓고 있는 글쓴이들과 조우하게 되면 정말이지 큰 위안이 됩니다. 나의 고민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는 듯한 안도감도 듭니다. 무어라 결론 내리지 못했던 매듭을 참 기막히게 잘 풀어낸 글귀들을 만나면 탄식도 나옵니다.

한두 권만 사도 될 것입니다. 절반은 읽지도 못하고 쌓이게 될 것입니다. 책이 주는 질감이 좋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쾌쾌한 책 삭은 냄새와 지적 허영으로 남을 것임을 압니다. 그런데도 기어이 한 묶음 사 들고 나오는 모습을 매번 반복하게 됩니다. 마치 세상사의 이치를 다 알아야겠다 작심한 것처럼. 많은 선인들이 버리고, 내려놓고, 줄여야 함을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데, 저는 아직 ‘모아둠’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작은 책임감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이제는 무책임해지고 싶다는 어느 분의 체념에 공감될 때. 위선과 치장이 겹기보다는 측은하게 느껴질 때. 완장과 감투가 부질없이 느껴질 때.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진영놀이와 편짜기에 분주한 이들의 유세와 계산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저는 헌책방으로 가곤 합니다. 그곳엔 적당히 낡고 숙성된 인생의 해답과 작은 행복들이 있습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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