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지난 14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현재 ‘대학 구조개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우선 한 가지는 교육부가 지난 6일과 14일 각각 발표한 ‘대학혁신 지원 방안’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을 통해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정원감축을 하게 할 것”이라는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평가, 사실상 폐지’ 입장이다. 나머지 하나는 “교육부의 ‘자율적 정원감축’ 주장,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평가 폐지’ 입장은, 거짓말도 이런 거짓말이 없다”는 대학들의 입장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둘 가운데 어느 입장이 더 맞는 이야기일까. 조급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결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의 대학 정원감축의 자율화’ ‘구조개혁평가 폐지’는 사실상 눈속임이다. 교육부는 ‘강제’의 반대말이 ‘자율’인 것처럼 포장하며, ‘강제 정원감축’ 기조를 폐지했기 때문에 ‘대학의 자율성은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번 ‘대학 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은 ‘강제’라는 단어만 없앴을 뿐 ‘반(半)강제’ 전략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지방대와 전문대학의 현실은 1·2주기 구조개혁 때와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오히려 고등교육 생태계를 교란할 정책이라는 대학들의 비판적 입장이 더 타당하게 들린다.

■‘대학 구조개혁’은 끝나지 않았다 = 지난 6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대학혁신 지원 방안’ 발표와 지난 14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의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기본계획’ 발표를 통해 교육부는 “정부 주도의 정원감축식 구조조정에서 탈피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개혁평가 정책의 중도 폐기를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대학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고등교육 전문가들과 대학 관계자들은 여전히 ‘3주기 구조개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 ‘구조개혁’은 진짜 끝난 것일까. 더 나아가 대학의 자율적 정원감축 시대의 막이 진짜 오른 것일까.

■‘도(道) 소재 지방대’, 1주기 구조개혁 ‘최대 희생양’ =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56만명이던 대학의 정원을 10년간 16만명 감축해 2023년까지 40만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대학 입학 정원을 3년 단위 주기로 나눠 각각 4만명, 5만명, 7만명씩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대학 교육의 질은 높아지고, 지방대와 전문대학이 함께 상생 발전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리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1주기 대학구조개혁’은 사실상 형식적 계획에 불과했고, 정책실패라는 전문가 평가를 듣게 됐다. 지방대와 전문대학이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고등교육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던 박근혜 정부의 계획과 전혀 맞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1주기 대학구조개혁 결과 △일반대 2만8000명(8.2% 감축) △전문대 3만2000명(16.1% 감축) 등으로 전문대에서 더 많은 입학정원이 감축됐다. 수도권과 지방 간 감축률을 따져봤을 때도 ‘1주기 구조개혁’은 당초 취지를 지키지 못했다. 서울 소재 일반대는 2.7% 감축에 그쳤지만, 광역시와 도(道) 소재 일반대는 각각 8.3%, 12.3% 감축됐다. 전문대의 경우, 서울과 지역 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서울 소재 전문대는 7.2% 감축한 반면 광역시 소재 전문대는 14.5% 감축률을 보였다. 도 소재 전문대는 무려 21.3%라는 감축률을 보이며, 1주기 구조개혁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1주기 이어 2주기서도 전문대 감축 집중 =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는 ‘1주기 구조개혁’을 실패로 규정하고, 2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정책을 전환한다. 문재인 정부는 ‘1주기 구조개혁’이 정원을 감축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은 마련하지 못해 교육의 질을 이전보다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1주기 구조개혁의 ‘등급제’는 오히려 대학 서열화를 더욱 심하게 만드는 배경이 됐으며, 지방대에 대한 고려가 상당히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A~E등급 등 5등급으로 나뉜 1주기 구조개혁 등급을 ‘자율개선대학’ ‘역량강화대학’ ‘재정지원제한대학’ 등 3등급으로 간소화했다. 또한 2주기 진단에서 자율개선대학을 선정할 때 권역별로 균형을 이루게 해 지방대의 질을 높이고 적정 규모로 다시 올려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재정지원 연계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1주기 구조개혁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대학·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도 새롭게 마련했다. 고등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일 수 있는 ‘대학별 혁신계획’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는데, 자율개선대학 전체와 역량강화대학 일부만 지원한다. ‘대학·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은 대학들의 혁신적인 중장기 발전계획 전반에 걸쳐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 만큼, 일반재정지원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2주기 진단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문재인 정부의 당초 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정원감축이 전문대학에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2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결과 2021학년도 입학정원에서 일반대는 오히려 늘어난 반면 전문대학은 감소했다.

지난달 대학교육연구소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각각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과 비교했을 때 2021학년도 일반대 입학정원은 803명이 증가한 31만8114명이지만 같은 시기 전문대 입학정원은 5108명이 감소한 16만235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일반대 정원이 증가한 데에는 상지대와 상지영서대학교의 통합도 영향을 미쳤다. 일반대인 상지대에 전문대학인 상지영서대학교가 통합되면서 전문대 정원은 줄고, 일반대 정원이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일반대 입학정원은 255명 증가로 ‘플러스 수치’다. 반면 정부의 입학정원 감축을 충실히 이행한 전문대는 결과적으로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할 수밖에 없게 됐다.

■‘수도권 국립대·일반대-지방 국립대·일반대-전문대’…‘설국열차’식 사회문제 야기 = 교육부는 이번 ‘2021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정부 주도 정책으로는 학령인구 감소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며 정원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선언했다. 언뜻 보면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은 1·2주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고등교육 전문가와 대학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이번 계획을 방향 전환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진단지표 가운데 ‘충원율’ 비중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유지 충원율’ 개념을 새롭게 도입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재학생 충원율을 충족한 대학에만 재정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 대학 관계자들의 “구조개혁은 끝나지 않았다”며 “3주기 구조개혁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대학의 자율성 강화’라는 교육부 논리가 예고된 현 상황에서 ‘대학 서열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놓고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수도권 국립대’부터 ‘수도권 일반대’ ‘지방 국립대’ ‘지방 일반대’ ‘수도권 전문대’ ‘지방 전문대’로 이어지는 대학 서열화가 교육 시장에서 여전히 큰 비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또한 수도권 집중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욱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방대와 전문대의 경우, 어려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일반재정지원 성격인 ‘혁신지원사업’이 유일한 숨통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정부의 강제 정원감축이 없어지면서 모든 대학이 자유롭게 정원을 조절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유지 충원율’을 충족해야 ‘일반재정지원’인 혁신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교육부의 논리를 보면 ‘지방대·전문대 죽이기’ 정책이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방대와 전문대학이 교육부의 ‘강제 정원감축 폐지’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난하는 주된 이유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상위대학의 자율성 강화는 하위대학의 더 처참한 강제적 구조조정이나 폐교사태를 딛고 확보되는 ‘설국열차’적 방식일 뿐”이라며 “현실적으로 서열화 구조의 하위에 속한 지방대와 전문대의 추가 감축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전문대의 ‘고등직업교육’ 영역을 일반대로부터 교육부가 지켜주려는 의지를 이번에도 보이지 않으면서, ‘국내 전문대학 교육정책’을 정부가 이제는 포기한 것이라는 불안한 소문마저 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전문대학 특성을 반영한 사업 신설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교육부 예산 총량이 늘지 않는 한 이러한 주장은 ‘일반대’와 ‘전문대’ 간 싸움을 부추기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박주희 한국전문대학기획실처장협의회장(삼육보건대학교 기획처장)은 지난달 23일 교육부 간담회에 참석해 “전문대는 직업교육을 책임지고 있고, 직업교육은 국가 책임 영역에 들어가므로 예산을 더욱 늘려야 한다”며 “전문대학 선정 수를 늘려서 국민에게 직업교육 혜택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며 “교육부가 예산을 더욱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답변을 전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결국 표면적으로는 강제적 정원감축이 폐지된다고 하나 실제 전문대의 삶은 그 전보다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욱 후퇴할 것이다. 사업 신설 예산도 늘지 않고, 대학서열화 체제에서 가장 하위에 속하니, 전문대는 소재 지역 내에서 거점 국립대와 일반대의 정원감축 수준을 보며 ‘재학생 충원율’을 방어해야 한다. 정원을 줄인 만큼 등록금 수입이 줄게 돼 재정난이 심화되면, 지역 학생들은 가난한 대학에 입학해야 할 이유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강석규 한국전문대학교무입학처장협의회 명예회장(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는 “정원을 못 채울 것 같은 대학은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정원을 더 감축하라는 것”이라며 “인구가 적은 지방, 전문대가 더 많이 정원을 줄이라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자율적 대학정원 감축 선언 이전보다 고등교육 생태계가 더 악화될텐데 굳이 ‘정원감축 기준’을 폐지해야 하느냐”며 “이 문제는 어느 한 전문대의 문제가 아닌 전체 전문대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므로 전체 일반대·전문대 평가에 따른 일정 비율 정원 감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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