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백형찬 교수
백형찬 교수

대학 총장을 영어로는 '프레지던트(president)' '챈슬러(chancellor)' '렉터(rector)'라고 한다. 프레지던트는 현대 대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인데 챈슬러와 렉터는 드물게 사용한다. 그런데 이 말 속에 중세대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챈슬러와 렉터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는 대학 총장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랙터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대학(university)이란 말에는 교수나 학생의 자치 단체(corporation)란 뜻이 들어있다. 그런데 대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학부(faculty)가 생기고 그 학부를 학부장(dean)이 관리하게 됐다. 학부는 보통 4개 학부(교양학부,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로 운영했는데, 교양학부에 교수와 학생이 가장 많았다. 교양학부는 출신지 별로 반을 나눠 운영했는데 파리 대학의 교양학부에는 프랑스 반, 피카르디 반, 노르망디 반, 영국 반이 있었다. 대학의 총장인 렉터는 교수와 학생 이 가장 많은 교양학부 학장이 맡았다. 이렇듯 교수 중심의 파리 대학에서는 렉터를 교수가 맡았으나 학생 중심의 볼로냐 대학에서는 렉터를 학생들이 선출한 총학생회장이 맡았다. 한편 파리 대학의 렉터는 보통 25세가 넘은 성직(聖職) 독신자가 그 직을 수행했는데 복잡하고 어려운 직무 때문에 5년 이상의 법률 공부가 필요했다. 또한 렉터는 상당한 재력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 이유는 대학 대표자의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족 가문 출신자들이 렉터를 맡곤 했다. 현재 렉터는 유럽 대륙의 총장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다음은 챈슬러에 대해 알아보자. 파리 대학의 전신은 노트르담 대성당 부속학교다. 대성당 부속학교가 발전해 대학이 된 것이다. 챈슬러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문서 국장을 지칭한 말이었다. 챈슬러가 하는 일은 대성당의 주교좌 인장을 관리하고 성당의 모든 일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성당 부속학교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감독권이 챈슬러에게 주어졌다. 성당 부속학교들이 대학으로 발전한 후에는 챈슬러에게 교수 면허를 수여하는 권한과 학생을 관리하는 권한이 부여됐다. 후에 챈슬러는 대학 총장을 뜻하는 말로 바뀌게 됐으며 학위를 수여하는 막강한 권한까지도 갖게 됐다. 한편 영국 대학의 챈슬러는 대학 자율의 기수 역할을 했다. 챈슬러는 끊임없이 대학의 자율을 방해하는 외부세력(교황과 주교, 왕, 시장, 시민 등)과 싸워야만 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경우, 챈슬러는 학문적 권위와 사법적 권위는 물론 교회 권위까지 소유한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챈슬러는 대학 내부에서 선출됐으나 임명 권한은 교회 주교(교구를 관할하는 성직자)가 갖고 있었다. 챈슬러 임명권을 놓고 대학과 교회는 여러번 심하게 갈등을 빚었다. 결국 대학이 챈슬러 임명권을 갖게 됐다. 이제 챈슬러는 교회 주교가 파견한 대리인이 아니라 대학의 자율권을 행사하는 대학 대표자가 된 것이다. 챈슬러의 권한은 더욱 커졌다. 법을 어기는 자에게 벌금은 물론 추방하거나 감옥에 가둘 수도 있었다. 게다가 법원이 내린 형벌의 집행권도 갖게 됐다. 이를 대학인은 물론 일반시민에게도 적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종교적으로 파문할 수 있는 권한도 가졌다. 이렇게 챈슬러의 권한이 막대해지자 대학과 도시 간의 갈등이 고조됐고, 시민과 학생의 싸움이 잦아지고 커졌다. 이러한 가운(gown), 타운(town)의 충돌에서 왕은 늘 대학 챈슬러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듯 챈슬러의 권한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당시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챈슬러가 갖고 있던 권위는 유럽 대학에서 최고였다.

이제까지 중세 대학의 총장에 대해 살펴봤다. 다음 글에서는 현대 대학의 총장 모습을 살펴보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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