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 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

2017년 11월에 고등교육법이 개정돼 대학평의원회의 설치가 법규화(제19조의 2항)됐다. 이 법은 대학평의원회를 심의기구로 정하고, 심의의 대상은 물론 그 구성요건과 운영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대학평의원회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았던 국공립대학들은 그 설치를 미뤄 오다가, 올해 들어서 마지못해 설치했다. 필자의 대학에서는 교내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비교적 쉽게 이뤄져서 다른 대학들 보다 일찍 활동이 시작됐고, 현재 정기적으로 회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학내 다른 구성원들은 차치하고 필자를 포함한 평의원들 모두는 상당한 부담의 업무를 해내고 있으면서도 이 기구의 존재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다른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법으로 명시돼 있는 기능인 ‘학칙 또는 제 규정들의 제정과 개정에 대한 심의’가 주된 역할인 현 상황인데, 이 일이 교수는 물론이거니와 학생 평의원에겐 결코 쉽고 가벼운 역할이 아니다. 격주로 현업 또는 학업의 많은 시간을 희생해 가며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 내용이 대부분의 피부에 와 닫지 않는 것들이다. 심의안건들의 행정용어에서 부터 발의취지에 대한 벌재자와 담당자의 설명이 없으면 이해가 불가한 것을 서너 건씩 검토하자니 그 부담이 보통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칫 구성원의 권익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놓질세라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그날의 에너지를 다 소모해 버리게 된다.

본부가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견제효과가 있겠다고 모르는 사람은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대학에서 교무위원회에서 통과된 심의안이 대학평의원회에서 비토된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앞으로도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급변하는 교육계 현실에서 학생이나 구성원들의 권익이 자칫 비민주적으로 침해되는 일을 예방하는 기능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국공립대학을 감시하는 촘촘한 행정의 그물망을 벗어나 구성원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 벌어지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대학평의원회의 설치 입법을 제안한 국회의원들이 이제 이 법을 개정하겠다고 들고 있다. 여영국 의원이 대표해 대학평의원의 최소수를 현재의 11명에서 25명으로 늘리고 동문 및 학교발전에 도움이 될 자를 1/6이상, 학생평의원의 수를 1/4이상으로 바꾸고자 하고 있다. 또, 이렇게 교수의 목소리가 대폭 축소된 대학평의원회가 기존의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대신해 총장 임용추천을 하도록 교육공무원법 개정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 개정 발의안에 대해서 전체 교수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육과 연구를 주도하는 교수가 대학의 주체여야 하고 총장선출을 비롯한 의사결정에서 교수 구성원의 비율이 높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 개정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얘기를 하고자 한다. 대학평의원회와 관련해 여 의원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점은 (최소한 국공립대학의 경우에 있어서는) 애초에 이 기구가 법으로 정해진 과정에 기인한 것이다. 대학 구성원들의 필요성 인식과 자발적인 요구에 의해 대학평의원회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의원들은 자신들이 제안해 입법한 지 겨우 1년 남짓한 현재의 법규로는 ‘대학평의원회가 대학 민주주의의 기본 단위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이번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 말하고 있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법에 의해서 1년여 만에 펼쳐질 수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제도의 도입취지를 반영하기에는 법률적 기반이 약하다’며 ‘구성원의 수가 적다’고도 하고 있다. 법률적 기반이 약하다면 무엇을 더 법으로 제한하고 지시해야 하는가? 구성원 수 25명은 ‘대학 민주주의의 기본 단위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학생들의 참여에 대한 보장이 매우 약한 상태’이라는데, 학생 평의원의 비율을 높여도 여전히 이 기구의 역할이 미미하면 그 땐 어떻게 하겠는가?

여 의원들이 사전에 대학에 와서 대학평의원회의 회의를 보기나 했는지 묻고 싶다. 필자의 대학의 평의원들은 그 큰 부담을 안고서 어렵사리 심의업무를 수행하면서 ‘대학 민주주의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크게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교내 구성원이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을 요청하는 일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아서 본부에 제안한 경험에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자발적인 일에서 비로소 민주적이고 창조적인 가치를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대학평의원회의 회의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으면 일반인이나 학생들은 이 기구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사실 필자의 대학에서는 대학평의원회의 법적 지위에 대한 해석의 혼돈으로 아직 홈페이지에 회의록을 게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개선이 될 제도상의 문제이다. 왜 여 의원들은 이 법을 애초에 만들었던 입장에서 ‘그런 문제가 아직은 있을 수 있다. 아직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조금 더 경험이 쌓이고 제도가 완비돼 대의 민주주의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자’라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하는가? 그렇게 해서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이 기구의 활성화를 이루도록 해 주지 못하는가? 법이 취지대로 잘 수행되지 않으면 더 옥죄는 법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국민을 그 법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가두고 범법자를 만드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과연 이번 개정안이 우리 대학사회에서 자발적 민주의식을 높이는 데 적절한지 심사숙고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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