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광양보건대학교 사회복지과 부교수

김도연 광양보건대학교 사회복지과 부교수
김도연 광양보건대학교 사회복지과 부교수

여과 없이 표출되는 주장들이 심각한 갈등이 돼 온 세상을 증오와 혐오로 채워가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모여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갈등이라는 존재 자체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도 단순히 사람이 ‘모여만 사는 곳’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사는 곳’ 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갈등은 그저 자연스런 현상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말 뿐이 아닌 진실로 함께 사는 곳 이라 별의 별 갈등이 시도 때도 없이 표출된다고 해도 ‘함께 살아 간다’라고 하는 가치의 강인함이 사람들 안에 살아서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비록 갈등이라 할지라도 한 없이 지속될 수도 없고, 성장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도 못 할 것이다.

우리는 성장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제자리를 잡아 가는 동안 저마다 속한 집단 안에서 각자의 처지를 가미한 신념 체계를 견고하게 구축한다. 그러면서 내가 속한 집단과 상반된 신념 체계를 가진 주장에 대해서는 틀렸다는 입장을 표명하곤 한다. 특히 나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상황이 예측될 때에는 한줌 부끄러움도 명분 밖으로 새어나올 수 없도록 단단히 하고 단 한 치의 물러섬도 허용치 않는다. 

스스로 옳다는 굳건한 믿음 안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이해관계는 혼재된 이념과 신념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다. 그리고 내 이해관계와 충돌을 일으키는 대상에 대해서는 변화와 제압을 시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해 버린다. 이제껏 각기 서로 다른 견해를 표출해 가며 나와 내가 속한 우리라고 믿는 집단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지지해 왔다. 그러한 변화는 실행과정에서 우리와 상대편을 보다 뚜렷하게 구분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난해해지고 피아(彼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위가 빈번해질수록 혼란은 한층 가중됐다. 이제껏 자의적으로 확신해 왔던 내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으로부터 사안에 따라 빈번하게 표출되는 인식의 차이를 보게 된다. 그 순간 같은 편으로서 철석같았던 믿음의 자리는 의구심과 실망감, 배신감이 대신하게 된다.

그동안 구분해 왔던 우리와 상대 간의 대립적·적대적 관계 설정을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는 자주독립이, 독재시대에는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였다. 이때는 타깃이 되는 집단과 대상자의 구분이 선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시대에 구조화된 채 난해하게 포장된 이해관계에 지배 당하는 오늘날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의 경계선을 뚜렷하게 세우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경계선조차도 자의적 명분을 붙여 가며 지극히 가뿐하게 넘나드는 상황이 돼 버렸다. 누군가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모두가 한국사회의 현실을 우려하며 서로들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사회 각 영역에서 통합되지 못하고 끝을 모르는 심각한 갈등이 돼 지금 이 순간에도 충돌하고 있다. 들여다보면 그 충돌은 각기 다른 주장에서 시작되지만, 주장이 소속 집단의 이해관계에서 결국 자유롭지 못할 때 혼란은 극에 달한다. 이러한 혼란을 경험하며 우리는 절대 불변하는 피아 구분의 무모함을 우려하고 경계한다. 또한 그렇게 경계선을 세우고 구분한 결과에 기대어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행위가 얼마나 무모하고 소모적인 행위인지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변화의 실현을 위해 피아의 구분을 요긴한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면, 증오와 혐오로 가득찬 지금은 ‘변화의 목적’ 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기득권의 유지나 지배세력이 돼 마음껏 누리고픈 권력 쟁취 자체가 변화의 목적으로만 보여지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나와 피를 나눈 자들 그리고 집단 내부에서 뜻과 이해관계를 같이 할 수 있는 자들만의 배제에 기반한 제한적 상생을 더 이상 허용해 줘서는 안 된다. 진정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라고 동의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할 가치는 상생의 모습이어야 하고, 추구할 변화의 목적도 ‘상생을 위한 변화’가 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분열과 증오로 얼룩진 채 공멸을 향해 치닫는 갈등은 이제 그만 스스로 멈춰야 한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신뢰에 기반한 통합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상생의 가치에 우리 사회의 희망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 희망은 내가 행동하지 않는 한 먼 발치에서 우리 곁을 맴돌기만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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