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한국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경상대 입학정책실 팀장)

우리나라 대입제도의 역사는 길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정작 미래 교육을 위한 성장은 더뎠던 것이 현실이다.

2007년 어느 봄날, 국민적 기대와 관심 속에 대입제도의 새로운 역사인 입학사정관제가 꽃피기 시작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선발의 새로운 시작이며, 학교 교육과 대입제도의 근본적 가치, 의미 변화를 요구한 교육 개혁이자 시대적 과제였다. 새로운 역사와 함께 꽃 피는 봄날 춘풍처럼 입학사정관제는 이렇게 우리 곁에 기대와 희망으로 다가왔다.

입학사정관제의 시작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을까. 입학사정관제는 기존 우리 대입제도사를 통해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성장가능성이라는 요소를 평가에 반영한 미래형 대입제도라는 점에서다. 입학사정관제는 발전가능성과 잠재역량을 평가요소로 활용한 선진 대입제도로서 대학 신입생 선발 업무를 수행하는 대입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한국사회에 도입시켰다. 이는 성적중심 줄 세우기 문화, 획일적이고 통제된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계기였다.

질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한국식 대입제도의 존재 가능성에 의문을 던졌다. 정성평가에 대한 인식이 한국사회에서 수용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시대의 가치관이 변하는 전환점에 이뤄진 평가방식 변화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가능할지 의문을 가진 것이다.

입학사정관들은 그간 이러한 의문과 궁금증에 답해 왔다. 한국식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학교 교육이 보다 성장과 역량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고교·대학의 교육과정 연계 중심에서 학교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열고, 성장중심 교육과정이 교실문화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기여하기도 했다.

2013년 입학사정관제는 한 차례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다. 학교 교육 내실화와 공교육 정상화라는 대입정책에 따라 기존 입학사정관제가 추구하는 이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성적중심 불평등 구조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키우는 학교 중심의 대입전형, 학생부가 평가에 활용되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현재 입학사정관제는 자리매김해 있다.

그간 우리사회는 시험 성적이 높은 인재를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수한 인재로 여겨 왔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이러한 통념적인 사고를 넘어 잠재역량과 발전가능성을 평가하는 전형이다. 성적으로 가늠할 수 없는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과 개별적인 특성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우리 학교 교육과정이 나아갈 길과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선발 가능성,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 지난 10여 년간 입학사정관들이 공정하고 정직한 노력을 쏟아왔지만, 또다시 우리는 교육적 이념과 색깔이 대립하는 양상 속에서 수시·정시 비율을 논의하고 있다. 대입전형은 전형마다 추구하는 선발 목표점과 특성이 있다. 그렇기에 전형요소를 각기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다. 대입전형의 성격과 특성이 다른데 동일한 기준으로 공정성을 논하고, 수시·정시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은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현장의 시선을 담아 향후 대입제도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하려 한다. 먼저 정시 확대는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정시를 늘리면 지난 10년간의 학교 교육은 다시 수능체제로 회귀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의 연계성, 2025년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와도 어울리지 않는 조치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기회 불균형은 더욱 커질 것이고, 지역·학교 간 고교·대학 서열화는 더욱 부추겨질 것이다. 향후 다가올 수능 절대평가를 대비해 수능 형태를 바꾸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비교과 활동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을 확보하는 대안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과 활동이 폐지·삭제된다면 학생부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 이를 폐지한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부교과전형과 달라질 것이 없다.

일부 대학에는 학생부종합전형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대입전형 운영여건과 역량, 인력이나 조직,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갖췄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운영할 정도의 충분한 역량과 시스템은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대입전형 평가 방법에는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지금은 수시모집 4개, 정시모집 2개로 전형방법이 제한돼 있어 전형별 특성을 살릴 수 없는 구조다. 대입준비에 대한 수험생의 심리적 부담감과 사교육의 영향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다는 전제 아래 최대한 대학의 자율성을 허용해야 한다. 지난해 발표된 2022학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를 존중하고, 장기적으로는 2025학년 이후 대입제도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평가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의 자격조건을 강화하고, 전문성도 신장시켜야 한다. 국가가 인정하는 전문자격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자에 한해서만 학생부종합전형 평가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공정성은 시대를 뛰어넘어 완벽한 모습으로는 구현될 수 없는 성질을 지녔다. 소위 ‘있는 자’와 ‘가진 자’에게는 어떤 대입제도든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사회 구조다.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의미 있는 교육을 없애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미래 사회의 교육적 가치가 누구에게는 시작의 기회가 되는 반면, 누군가에게는 기회 제한으로 다가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정하게 배분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입전형의 공정성이지 않을까 싶다. 입학사정관들은 그 길 위에서 공정하고 정직한 노력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