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포함 정부 기관 간의 권력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용어로 ‘기승전청’(起承轉靑)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일은 청와대로부터 시작되고 종결된다는 말이다. 정부 부처가 있지만 중요 결정권은 청와대에 있음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국가원수인 동시에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대통령 권한은 막강하며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크다.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보좌기구를 두는데, 우리 경우 청와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 해당된다.

유능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유능한 참모의 존재가 거론된다. 대통령은 참모의 보좌를 받으며 내각을 통솔하고 국정을 운영한다. 정세를 판단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참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 청와대 참모진 역량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역량도 문제지만 당정청 협조에 있어서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지만 대통령 단독으로 국정운영을 할 수는 없다. 집권당이 나서 대통령 정책을 입법으로 뒷받침 해 줘야 하고, 행정부가 정책수행을 통해 대통령의 국정운영 의지를 구체화해야 한다. 이른바 대통령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해 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몫이다.

청와대가 국정운영의 컨트롤타워인 것은 맞지만 요즈음의 청와대는 중병에 걸린 듯하다. 조국 블랙홀에 빠져 당정청 합의에 의한 국정운영 기조에도 틈새가 나는 모습이다. 조국 사태가 진행형이다 보니 나머지 핵심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지 청와대의 조급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조급함은 핵심과제에 대한 당정청 협조 라인의 오작동을 불러온다. 정상이라면 적어도 대통령 시정연설에 담겨질 핵심정책에 대해서는 당정청 간 협의과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대통령 시정연설 후 나온 정황들을 살펴보면 ‘당정청 협의과정 생략’과 ‘교육부 패싱’이 발견된다.

대입제도 개선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총선을 앞둔 당의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과제였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시점에 건들여서 득(得)될 것 없는 계륵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을 터이다. 당과 협의했으면 이렇게 막 나가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다.

교육부 입장에서는 장관을 중심으로 연일 학종에 나타난 문제해결에 나서는 마당에 갑자기 정시확대 얘기가 나오자 머쓱한 입장이 됐다. 유 장관은 대입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시확대보다는 학종 공정성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그동안 당정청 간에 논의돼 왔던 방안과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청은 대입제도의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학생부종합전형 개선, 학종선발비율이 높은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 상향 등에 집중해 왔었다. 이른바 ‘정시 30% 룰’ 안에서 논의가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당정청 간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조국 사태로 불통정부로 낙인찍히고 있는 마당에 금번 사안은 집권세력 내에서도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 주고 있다. 총선이 내년인데 적어도 교육문제와 같은 ‘핫 이슈’는 대통령 발언으로 공식화되기 전에 미리 당정청 간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대통령 시정연설이 청와대 비서진 주도하에 급작스럽게 결정되고 발표된 것이라면 당정청 협조를 근간으로 하는 대통령 국정운영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국 사태로 둘로 갈라진 사회분열 양상이 교육문제를 둘러싸고 더 다기화(多岐化)돼 가는 형국이다.

청와대는 누가 뭐래도 국가권력의 핵이다. 대통령이 유능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청와대 참모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의 정무 감각, 정세 판단 그리고 전문성이 대통령의 상황 인식과 대처 능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승전청이 청와대의 과도한 간섭을 비꼬는 말이 되지 않고 청와대 컨트롤타워 역할을 인정하는 말로 전변되기 위해서 청와대 참모진과 운영의 일신(一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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