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도서관에서 두 명의 사서가 비슷한 시기에 쓰러졌다. 그것도 그냥 삐끗해서 넘어진 것이 아니라 한 명은 뇌출혈, 또 한 명은 이름도 생소한 혈관성 두통(Vascular Headache)과 자발성 두개 내 저뇌압(Spontaneous Intracranial Hypotension)이라고 했다. 알고 보면 뇌경색 뭐 이쪽인 것 같은데,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고 했다.

소식이 전해진 후 다른 부서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니 도서관만큼 편한 곳이 어디 있다고 쓰러지고 그래? 혹시 꾀병 아냐?”

이거 참…. 학창시절 책 몇 권 빌려 본 게 도서관 경험의 전부고, 사서들이 도서관에서 책이나 보며 한가롭게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놀다가 쓰러져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면 입이나 닫고 있으라고 화를 내야 하는 건지, 한동안 속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요즘 대학도서관 사서들은 힘들다. 책이 중심이던 시대에는 그나마 도서관 사서의 역할이 나름대로 명확했지만,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와 정보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그리고 이용자 요구의 다변화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역할과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

도서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의 수집과 처리, 정보제공 서비스는 기본이고 이용자를 위한 정보활용교육과 독서프로그램도 운영해야 한다. 문화적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대학의 현실상 각종 공연과 전시 등 대학의 문화 활동 중심지 역할도 해야 하고 디지털 장비와 다양한 공간 관리 업무까지 해야 한다. 게다가 대학본부로부터 떨어져 있고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이래저래 대학의 미래 계획에서 소외되기 일쑤고 하는 일에 대한 인정은 둘째 치고 대학 내 조직 축소 및 인원 감축의 최우선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이고 사서는 정보 중재자이자 정보활용 교육자라는 수식어는 대학 수업 때나 듣던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실제 도서관 현장에서의 사서는 멀티 기능을 수행하는 슈퍼맨이자 육체노동자, 감정노동자에 가깝다. 앞으로의 상황이 낙관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근거가 머리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용자들은 도서관보다 더 자유롭고 쾌적한 분위기의 북카페를 선호하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그리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들은 대학도서관에 최첨단 서비스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상업적 검색엔진들의 빠른 진화와 전 세계 도서관의 책을 스캔해 무료로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을 착실히 진행 중인 구글은 도서관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세상은 계속 변해 갈 것이고, 모든 직종이 그렇듯 대학도서관과 사서의 역할 및 전문성도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더 정제되고 확고하게 다져질 것이다. 이미 몇몇 대학도서관들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간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이용자의 요구와 움직임을 모니터링해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건 어쩌면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메시지의 반대말이 아닐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발버둥 치다 쓰러질 다음 차례가 누가 될지 답답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용자들에게 정보 제공과 교육을 통해 연구와 학습을 지원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편견과의 싸움 그리고 새로운 역할 찾기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도서관 사서들의 건투를 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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