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과제에서 빠진 뒤 정책 흐지부지
단순 재정지원으로는 국립대 혁신 어려워
지역 내 대학 간 통합은 가속화…장기플랜 필요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4일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종조합(대학노조)가 기자회견에서 이를 꺼내 들면서다. 대학노조는 “대학 서열체제 타파를 위한 국공립대 네트워크가 2년 넘게 잠만 자고 있다”며 고등교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촉구했다.

■시작은 창대…끝은 미미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지역에서 학문과 연구를 통해 지방 인재를 배출했던 지역 국립대는 서울·수도권 사립대에 밀려 외면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사이 서울과 지역 간 불균형은 더욱 악화되고, 대학의 서열화도 점차 뚜렷해졌다.

당초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대학 서열화와 지역 불균형 과제를 타파할 대안으로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대학 서열화를 깰 대안으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이른바 ‘연합대학’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대통령 공약에 탄력을 받아 지역 국립대에서는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논의가 꾸준히 진행돼 왔다. 그 해 거점국립대 총장들이 모여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거점국립대의 역할과 발전방향’을 주제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 공약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러나 2017년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내놓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빠지면서 정책 논의도 지지부진해졌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7대 혁신과제에도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에 대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28일 충청지역 8개 국립대가 공동 교육혁신센터 출범식을 개최했다.
지난 28일 충청지역 8개 국립대가 공동 교육혁신센터 출범식을 개최했다.

■국립대학육성사업, 꿩 대신 닭?= 교육부는 국립대학육성사업으로 국립대 살리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9년 국립대학 육성지원 재정을 확대해 예산을 1504억원으로 늘렸다. 국립대학혁신(PoINT)사업은 국립대학육성사업으로 개선됐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서 대학 간 공동 네트워크 구성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8일 충청지역에서는 충청권 8개 국립대가 참여하는 국립대 공유 네트워크 구축 논의가 시작됐다. 대학들은 대학의 인적·학술적 자원을 통합 관리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자원 공유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이어 8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실현할 전담 기구도 공동 설립했다.

강원지역에서는 지난 8월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강원권 공동 교육혁신센터’를 설립하고 협력을 약속했다. 이 역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대학의 위기와 지역침체를 막기 위해 강원권 대학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경남지역에서는 경상대와 경남과기대가 통합 네트워크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내 최초로 국립대 간 통합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역 국립대 A처장은 “아무래도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당장에 실현 어렵다 보니 교육부가 보다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니겠느냐”며 “지역 단위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해 거점 국립대로 확대하자는 전략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재정지원사업만으론 국공립대 살리기 불가= 전문가들은 재정지원사업이 장기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제대로 된 국립대 육성을 위해서는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필수라는 주장이다. 실질적으로 지역 국립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임교원을 확보하고, 시설을 개선하는 등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데 사업성에 불과한 재정지원만으로는 혁신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3~2017년 교육부 주요재정지원사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수도권 주요 사립대 9곳(고려대·건국대·경희대·서강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이 지방거점 국립대 9곳보다 예산 지원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의 주요 재정지원사업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BK21+사업은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의 경우 5년간 4000여억 원을 지원받는 반면, 지방거점국립대는 2900여억 원을 지원받고 있었다. 전국 대학원생 중 서울 주요 사립대 대학원생 비중은 약 13%로 거점국립대의 11%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연구지원금은 1000억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김영석 경상대 교수(일반사회교육)는 “국립대는 서울·수도권 대학들에 정부재정지원부터 여건이 굉장히 열악하고, 국립대 육성사업으로 지원하는 비용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역의 국립대를 살리려면 교육 여건 개선, 졸업 기준 조정 등의 대학의 전반적인 수준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론 통합 네트워크…지금이라도 로드맵 필요= 대부분의 국립대 관계자들은 현 시점에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실현이 어렵다는 데 공감했다. 학령인구 감소, 지역인재 유출 등 당장 해결해야 할 고등교육 이슈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가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대학서열 해소 어떻게 하나’ 토론회에서도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는 “지방 거점 국립대의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네트워크에 속한 대학이 유수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각 학교별로 강점이 있는 단과대나 학과를 묶는 구조조정을 통해 각 학교가 특성화된 학문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오현 거점국립대교수연합(거국련) 상임회장은 “일단 급한 것은 지방살리기와 재정지원 사업”이라면서도 “지금 국립대는 학문후속세력의 단절, 이공계를 제외한 자원의 소멸 등 대학이 쪼개진 상황에서는 더욱 어려움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장기적으로는 국립대가 전면 개편돼야 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김영석 교수는 “당장에 대학을 통합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동학위나 공동혁신 등의 단계적인 방법이 있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발표하고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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