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백형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백형찬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유럽 중세의 대학은 ‘교수와 학생의 조합’이었다. ‘교수와 학생 가운데 누가 먼저 존재했느냐?’라는 질문에는 ‘교수가 먼저 존재했다’는 답이 맞는다.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이전에 이미 사회에서 신학, 의학, 법학 등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살레르노 의학 대학, 볼로냐 법학 대학, 파리 신학 대학에 훌륭한 교수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유명한 교수에게 전문지식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살레르노와 볼로냐로 왔고, 프랑스 파리로 왔다. 이렇듯 교수와 학생이 기꺼이 만나 ‘중세 대학’이 탄생한 것이다. 대학 강의는 주로 교수가 머무는 집에서 이루어졌으며, 간혹 부잣집 집 학생의 집이나 도심에 있는 방을 빌려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가난한 교수와 학생은 건물이 아닌 야외에 짚방석을 깔고 강의를 했다.

중세시대의 교수와 학생의 신분은 ‘성직자’였다. 그들은 교회 성직록(聖職錄)에 등록돼 교회로부터 일정액의 급여와 특별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교회는 교수와 학생에게 법적·경제적 특권은 물론 신체적·정신적 특권까지 보장했다. 이러한 보장과 특권을 누리기 위해 교수와 학생은 대학에 적(籍)을 뒀다. 교수는 성직자 신분이기에 독신 생활을 해야만 했다. 만약 교수가 결혼하게 되면 대학을 떠나야 했다. 이러한 독신제는 특히 신학 중심의 파리대학에서 엄격히 적용됐다.

또한 교수는 그 특수한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외투를 걸쳤다. 외투는 오늘날 전 세계 대학 졸업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운이 아니라 카파(capa)였다. 카파는 후드 달린 망토로 두건이라는 뜻의 라틴어 'cappa'에서 왔다. 교수는 카파를 착용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강의할 때는 꼭 카파를 입었다. 카파의 색깔은 처음에는 검은색이었으나 그 후에 붉은색 계통으로 바뀌었다. 카파는 세월이 흐르면서 가운으로 대체됐다. 가운은 헐렁하면서 긴 겉옷이다. 가운은 오늘날에도 특수 계층의 사람들이 입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학 학위 수여식때 교수는 학위복을 착용한다. 지금도 유럽의 전통 있는 대학에서는 교수가 권위를 나타내려고 가운을 입고 가발을 쓰고 강의를 한다. 그런데 교수들이 학위 수여식 때 입고 등장하는 가운은 중세시대 파리대학이나 볼로냐 대학에서 착용했던 그 카파가 아니다. 현재의 가운은 근대 들어 미국 뉴욕주의 알바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이 미국 학위복의 주류를 이루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또한, 가운을 착용하는 사람으로 법관과 신부, 목사를 들 수 있다. 법관은 법정에서 근엄하게 가운을 입고 재판을 한다. 가톨릭교회의 신부나 개신교의 목사도 가운을 입고 거룩하게 미사와 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가운은 거룩함과 근엄의 표상이 됐다.

중세 대학에서 교수에 대한 평가는 수강생 수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즉, 수강생이 많고 적음에 따라 교수의 처우가 달라졌다. 그래서 교수는 자신의 강의에 더 많은 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학생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학점을 후하게 주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부 저속한 교수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 갖가지 장사를 했는데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를 운영했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도 했다. 이러한 질 낮은 교수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수는 훌륭한 인품을 갖췄다. 특히 볼로냐 대학의 법학 교수는 ‘고귀한 사람’으로 불리며 국왕의 고문을 맡아 사람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았다. 파리대학 신학 교수들도 고위 성직을 겸하며 존경을 받았다. 다음번 글에서는 학생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는 전설적 대학자 ‘아벨라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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