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욱 서울대 의대 교수

최근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의 항암치료 사용이 논란이다. 해외 유튜버가 이것을 먹고 말기 암을 고쳤다는 방송이 알려지면서 국내 말기 암 환자들 사이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너도 나도 복용을 하고 다시 유튜브로 퍼트려 급기야 대한의사협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체에서는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약품으로 복용 중단을 권고했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기다려도 죽는 것이니 그깟 부작용을 겁낼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당국 입장에서는 코오롱 인보사 판매 중단 사건으로도 흉흉한데 이를 방치할 경우 생기는 피해에 대해 지탄을 받을 우려가 더 크다.

펜벤다졸은 여러 논문에서 세포실험과 동물실험에서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임상시험을 한 적은 없다. 임상시험을 통해서만 부작용이 나타나는 용량과 효과가 있는 암종(癌腫) 대상, 용량 및 다른 항암치료와의 효과적인 병행요법 등을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40년 전부터 발매돼 특허가 없고 가격도 한 알에 2천원밖에 안 해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하더라도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임상시험을 할 동기가 없다. 요즘 항암제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데 특허 보호도 안 되는 수천 원짜리에 투자할 수가 없다. 가격이 낮은 것은 환자와 이를 부담해야 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장점인데 오히려 신약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신경내분비종양이란 희귀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희소병이다 보니 제약회사의 관심이 적어 임상시험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쓸 수 있는 약이 많지 않고 정립된 치료법도 없다. 독일·호주 등 해외에서는 스티브 잡스도 치료받았던 방사성미사일 요법인 루테슘 도타테이트(Lu-177 DOTATATE) 핵의학 치료를 2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으나 미국·유럽에서 신약 허가는 작년에 났다. 독일·호주는 다른 치료법이 없는 말기 암 환자에 대해 의사가 책임을 지고 허가되는 않은 치료를 할 수 있는 동정적 치료제도가 있어 가능했으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는 임상시험을 통한 허가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루테슘 도타테이트 역시 특허가 없어 아무도 임상시험을 하지 않다가 미국이 특허가 없어도 희귀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고 허가를 득하면 7년간 독점 판매권을 주는 제도가 생기면서 프랑스의 AAA 벤처 회사가 다국적 임상시험을 수행해 작년에 허가가 난 것이다. 이 성공을 계기로 AAA사는 노바티스에 4조원에 팔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장 크기가 작아 노바티스에서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 신청을 하지 않아 해외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약이 불법 치료로 남아 있다. 필자는 2017년부터 말레이시아, 독일에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를 원정 치료 받도록 의뢰하고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평가와 후속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정부나 공공의료기관이 임상시험의 스폰서가 되는 것을 제안한다. 루테슘 도타테이트는 과학기술부의 연구과제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5년간 개발과 동물을 이용한 전임상시험을 했으나 스폰서가 없어 임상시험을 수행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필자와 환자, 기자가 이런 딱한 사정을 양승조 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찾아가 호소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희귀의약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지원하고 제약업체가 참여하는 임상시험이 곧 시작될 예정이다. 펜벤다졸의 경우에도 정부가 지원하고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임상시험을 수행하길 강력하게 권고한다. 저렴하고 효과 있는 신약이 허가되면 국민과 정부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언제까지 탐욕스러운 글로벌 제약회사의 행보에만 우리 몸을 맡길 것인가.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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