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배상기 가톨릭대 교수
배상기 가톨릭대 교수

지하철을 타서 앉게 되면 잠을 자든지 책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탈 때 ‘어느 칸에 타야 자리를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 종점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의 경우는 먼저 타는 사람이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탈 경우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내리는 곳이 어딘가에 따라 내가 자리에 앉는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할 때 주로 7호선을 이용했다. 아침에는 도봉산역에서 타고 숭실대 역에서 내려 버스를 이용해 대학원엘 갔다. 저녁에는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숭실대 역으로 와서 7호선을 타고 집으로 가곤 했다. 28개의 역을 지나는 긴 시간이므로 가능하면 자리에 앉고자 노력했다.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도봉산역과 숭실대 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전략을 달리해야 했다. 도봉산역은 주로 출발하는 지하철이 많으므로, 선착순으로 지하철을 타게 되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침에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지하철을 타고자 했다. 그러나 저녁에 지하철을 타는 숭실대 역은 중간역이므로 잘못 타면 자리에 앉지 못하고 오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적게 타는 칸을 알아서 타야 자리에 앉을 확률이 높았다.

그날도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밤 9시가 넘은 시각에 숭실대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맨 앞 칸에 타면 자리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다른 칸과 달리 맨 앞 칸에는 사람들이 적었었다. 그날도 맨 앞칸으로 갔다. 그런데 지하철이 오는 것을 보니 맨 앞칸에 사람이 꽉 찼다. 잠시 고민하다가 두 번째 칸에 탔다. 지하철을 타고서도 생각을 했다. 어떤 방향에 서야 자리가 쉽게 날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가장 빨리 내릴 것인가? 그런 후에 가장 빨리 내릴 것 같은 사람 앞에 섰다. 그런데 다른 곳에 서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그 자리를 고수했다.

지하철이 가면서 정차하는 역마다 사람들이 내리고 탔다. 3개의 노선이 환승하는 고속터미널역에 오니 필자가 서 있는 반대편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거의 다 내리고 새로 탄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필자가 자리에 앉고 싶어 기다리는 앞의 자리에서는 한 명만이 내렸다. 그러나 필자가 자리에 앉으러 갈 수 없었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였다. 내린 사람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앉았다. 그 사람은 지하철에 나보다 늦게 탄 사람이었는데 자리를 먼저 차지한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면서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사람들이 더 많이 타면서 필자는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면서 한 사람 앞에 서게 되었다. 결국, 그 사람이 내려야만 필자는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앞의 사람은 야구를 보면서 내릴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주변의 사람들이 내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자리에 앉기를 반복하면서 몇 번씩 다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유독 필자 앞의 사람은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야구 중계만 보고 있었다.

필자는 종착역을 두 역 앞둔 마들역에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26개 역을 서서 오는 동안에, 필자보다 늦게 탔는데도 먼저 자리에 앉은 사람이 많았다. 우리 인생도 지하철에서 자리 잡기와 같다는 생각이다. 빈자리가 많은 지하철은 먼저 타는 사람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지하철은 그렇게 빈자리가 많은 지하철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이다. 우리는 출발역이 아니라 중간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철에 타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 성적과 수능 성적이 좋다고 해서 인생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학교 성적과 수능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자리 잡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지하철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성적과의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연구가 많다. 성적 이외에 그 무엇을 갖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성적 이외의 그 무엇을 빨리 찾는 것이 인생 지하철에서 자리 잡기에 성공할 수 있는 성공의 요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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