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선 서강대 대학원 행정법무학과 대우교수

방송 콘텐츠에 앞뒤로, 직간접적으로 결합된 광고들이 참 많다. 광고 시청을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현대 사회는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려운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다. 여전히 시청자(소비자, 가입자)들은 공급자가 제공하는 광고에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노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무의식적으로, 무방비적으로 시청해야만 하는 광고 때문에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시간(삶)’을 빼앗긴다는 점이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원치 않는 것 때문에 잠식당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켜야 할,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할 소중한 권리이자 절대적 자산이다. 일생에 거쳐 (방송)광고에 노출됨으로써 부지불식 간에 빼앗기고 있는 시간에 대한 인권적 감수성, 제도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해 방송 콘텐츠와 광고는 아주 정밀하게 구분, 관리될 수 있다. 광고 배치나 분량 등 기술적 관리는 물론이고, 본방 콘텐츠와 광고가 내용적으로 긴밀히 연결되는 전략적 관리가 가능하다. 선호하는 광고만 노출되도록 선택할 수도 있고, 광고 잔여 시간을 표기하거나, 광고를 생략하고 건너뛰는 기능도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다.

현재 시청자들은 방송 콘텐츠를 보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시청료, 이용료 등을 부담하고 있다. 방송사업자들은 시청자가 광고를 봄으로써 방송 이용료가 절감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업자의 광고 수익과 이용료가 공정한 상관관계를 갖는지는 예리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다. 일단 시청자 입장에서 광고를 거부할 권리가 최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그런 전제 위에서 기존 같이 광고 시청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거나, 광고 시청을 오히려 원하는 이용자에 한해 이용료 가격이 조정돼야 한다.

물론 방송 시청은 시청자 자신이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광고가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문명 시대에 TV는 핸드폰과 마찬가지로 뉴스, 영화, 음악, 교육, 교양, 실내체육, 공연, 시사, 다큐, 여행, 어학 등 유효 정보를 얻는 생활 인프라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사이 일방적으로 방영되는, 그 많은 광고들을 시청자가 일일이 선택적으로 회피하기란 쉽지 않다.

광고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홍보 목적으로든, 정보 기능으로든 광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잘 만든 창의적인 광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작품이고 콘텐츠이며, 대중의 인식과 상상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시청자가 광고에 시달려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일방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광고를 거부할 수 있고 광고로부터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정서를 교란당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광고의 작품성·예술성· 공공성·참신성·효과성 등이 활발하게 논해져야 한다.

우리는 현란한 과학기술에 기반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 대전환기에 서 있다. 방송 광고가 더 이상 사람의 시간을 축내거나 반복적으로 세뇌시키는 방식으로만 존재해서는 곤란하다. 광고를 전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최대한 축약하거나, 줄이거나, 건너뛸 수 있어야 한다.

광고학의 근본적 원리는 수정돼야 한다. 시청자는 광고를 당연히 봐야 하는 것이며, 부득불 수용해야만 한다는 전제하에 방송 광고 종류와 편성 방식에 대해서만 규율하고 있는 방송법도 개정돼야 한다.

사람의 자유와 시간을 가급적 침해하지 않고, 일상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광고 문화도 진화해야 한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다고 해서 그것이 원래 옳은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것들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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