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수 본지 논설위원/한양대 ERICA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박기수 한양대에리카 교수
박기수 한양대 에리카 교수

교육부는 11월 28일 ‘2023년부터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정시모집 선발 비율 40% 이상 확대’를 골자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현행 대입제도의 근본적인 모순을 파악하지 못한 개편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개편안이 2022개편안을 발표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발표됐다거나, 정시확대가 결국 사교육 좋은 일만 시켜줄 것이라거나, 교육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했다는 비판은 모두 타당하다. 특히 정시모집이 학생부종합전형보다 사교육 효과가 크고 고소득층, 서울·경기지역, 특목고·외고·자사고 등에 더욱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그렇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공교육을 중심으로 지역이나 빈부 격차 그리고 학교 종류와 상관없이 공정한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번 개편안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녀들의 학생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그곳에 기재된 수상실적과 세부능력특기사항과 종합의견 등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과연 학생부로 평가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을까? 학생부 양식이나 분량 그리고 작성 과정의 공정성 여부가 애초에 보장될 수 있는 시스템인지 생각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학생부 양식과 분량 그리고 서술방식으로 대학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과목에 따라 여러 개의 반을 들어가는 선생님이 수많은 학생 개개인을 깊이 있게, 적어도 대입에서 과목 성취도를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평가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발상일까? 그러다보니 소위 특목고·외고·자사고 등에서는 학생이 작성한 것을 선생님이 복사, 붙이기도 한다니 더욱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 학생부 작성 과정의 공정성을 누구도 견제할 수 없다는 것도 뼈아픈 지점이다. 더구나 이번 개편안에서는 2024년부터 자기소개서·봉사활동 등 비교과영역 점수 반영이 폐지되고 자율동아리가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등 결과적으로 교과내신과 세부능력특기사항, 종합의견 정도만 남는 형국이다. 또한 고교 프로파일을 전면 폐지하고 면접에서 서류단계까지 고교정보 블라인드 확대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는 더욱 심각하다. 학생부 자체도 신뢰하기 어려운 형국인데, 학생부에서 그나마 선발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부분 정보를 폐지하고 선발하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보고 선발하라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대입제도의 공정성 확보가 절실한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불공정의 시스템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생각하고 근본적인 개선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큰 문제를 낳을 뿐이다. 대입제도는 교육부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합의 가능할 수 있도록 보편적이고 객관적이어야만 한다. 자녀들의 수능 성적표를 보면서 원점수가 무엇인지, 표준점수가 무엇인지, 그것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혼란스럽다면 그것은 결코 건강한 모델은 아닐 것이다.

대입제도는 ‘지금 이곳’의 교육현실에서 고민할 문제다. 선진모델 운운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 도입에 골몰하지 말자. 누구도 수긍하지 못하는 현재의 대입제도는 교육부의 독주가 빚은 참사다. 획일적·일방적 개발독재 시대의 논리를 공정성이라고 말하지 마라.

선발 주체에 선발권을 줄 때 자신들에게 최적화된 선발 방식을 고민한다. 손발을 묶고, 눈까지 가리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인재를 선발하라면 난센스다. 대학의 근간이 우수 인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학에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라. 평가를 평가할 수 있어야만 부조리의 복마전 같은 입시전쟁에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교육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대학들이 자기만의 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정시냐 수시냐가 아니라 자율에 있다. 자율의 끝은 책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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