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하다 보니 다양한 설득 상황과 인간의 소통, 기업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1학년 전공 수업에서는 매 2학기에 필수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개설, 수강하게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스마트한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데 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취약하다. 특히 일정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담당하고 조리 있게 밝히는 것은 어렵다. 토론토대 연구팀의 연구에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고소공포, 벌레, 빈곤, 깊은 물 보다 앞서 가장 커다란 공포라고 밝힌 바 있을 정도다.

대학의 1학년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학교 교육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수업을 듣게 되는데 아직은 대학의 수업과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일부 학생들은 진로와 자기 삶에 대해 여전히 고민과 방황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스피치 수업에서는 ‘마이 버킷리스트(My Bucket List)’를 작성해 마지막 과제로 학기말 버킷리스트 발표회를 거듭해 오고 있다. 2008년 국내에서 개봉된 동명의 영화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로 어쩌면 아직도 젊은, 살날이 많이 이들에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가혹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좋은 과제였으며 삶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게 됐다는 신선하고 진지한 반응과 만나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과제를 처음 받았을 때 1학년 수강생들의 얼굴은 ‘이런 과제를 왜 내주시나?’ 같은 표정이지만 발표를 하고 난 후에는 “좋은 과제로 나를 돌아보고 인생을 계획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짧은 15주 동안 많이 성장했음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산다는 건 어쩌면 죽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사람들에게 좀 더 애착을 갖고 충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는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50명의 수강생들의 발표가 모두 끝난 후 교수는 과제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설명하고 각 발표의 장단점을 피드백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업 담당교수의 당부로 ‘CMA’를 덧붙인다. 흔히 CMA는 재테크 통장으로 ‘자산관리계좌(Cash Management Account)’의 준말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CMA는 Carpe diem, Memento mori, Amor fati의 머리글자다.

잘 알려진 라틴어 3문장 중 첫 번째, 카르페 디엠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 주연)이 학생들에게 현재를 즐기고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라는 의미로 전한 말이다. 자칫 열심히 놀라는 것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순간에 충실하라는 당부다. 두 번째, 메멘토 모리는 로마의 개선장군이 노예들을 시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언젠가는 죽을 수 있으니 겸손하라’는 교훈이다. 시간과 자원의 유한함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아모르 파티는 몇 년 전 가수 김연자가 부른 노래로 다시 유명해졌다. 여기서 파티(fati)가 파티(party)는 아니지만 ‘인생은 지금이야.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처럼 자기 운명을 사랑하면서 좋아하는 그리고 잘할 수 있는, 가슴 뛰는 업을 찾기를 부탁했다.

그러고 보면 CMA가 이제 막 대학 1년을 마감한 20살 Z세대들에게 정답은 될 수 없지만 해답의 단초를 제공할 수는 있겠다. 현재에 충실하면서, 나의 시간과 정력을 아껴서, 자기를 사랑한다면 이 또한 행복한 삶 아니겠는가? 이제 곧 학기말과 연말 그리고 방학이 시작된다. 긴 겨울방학 동안 더 커져서 돌아올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강의실의 스위치를 내린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