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노동자·비정규 강사…대학 구성원 외면 말아야
금수저 자녀 입시비리·홍콩 시위지지, 부조리에 분노
대학의 위기 직면…변화와 혁신의 기로에 선 대학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늘 그렇듯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지난 시간을 분석하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면 아쉬움의 무게를 조금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본지는 2019년 한 해를 돌아보며 대학가의 뜨거웠던 이슈를 정리했다.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에는 상대방을 죽이면 함께 죽는다는 의미의 ‘공명지조(共命之鳥)’가 선정됐다. 올 한해 대학가는 공생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한 해였다. 공생하지 않으면 결국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대학가에도 울려 퍼졌다.

서울대 청소, 시설 노동자들이 국정감사 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서울대 청소, 시설 노동자들이 국정감사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청소노동자 사망으로 촉발된 대학 노동자 인권= 청소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것도 하루의 피로를 풀고, 쉬어가는 휴게 공간에서 말이다. 지난 8월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 A씨가 지하 1층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계단 아래 마련된 이곳은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공간이었다.

서울대는 사건 이후 자체적으로 학내 휴게실 140여 곳과 경비실 80여 곳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청소노동자 휴게실 146곳에서 45곳은 창문이 없었고, 19곳은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도 실태 점검을 나서면서 서울대는 두 달 만에 권고사항에 대한 후속조치를 완료했다. 그러나 이처럼 빨리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이었음에도 대학의 구성원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국정감사에서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노동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육도 해결되지 못한다”며 노동 불평등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립대 청소노동자 휴게시설을 조사한 뒤 겨울방학까지 시설을 개선할 것”이라며 “사립대는 11월까지 실태를 조사한 후 개선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80%를 차지하는 사립대에 대해서는 아직 실태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여전히 청소 노동자들은 열악한 휴게 환경을 호소하며 편안히 휴식할 공간만이라도 확보되기를 고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지난 16일 故 김정희 한예종 겸임교수의 사망과 관련해 강사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지난 16일 故 김정희 한예종 겸임교수의 사망과 관련해 강사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강사법 5개월, 끝나지 않은 진통= 8월 강사법이 시행되고 5개월이 다 돼가지만 법안을 둘러싼 진통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강사들의 70%는 강사법에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사법이 불안정한 강사들의 지위를 안정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수치는 이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10월 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소규모 강좌는 줄고, 중·대형 규모의 강좌는 늘었다. 고용노동부의 10월 노동력조사 결과에서도 교육서비스업 종사자는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교육계는 통계를 두고 임시·일용직 강사를 줄인 여파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강사법 시행의 여파가 강사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에서 강사를 축소하면 전임 교원들의 초과 강의로 인한 피로도가 높아지고, 수업의 질 하락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않으면 대학 본연의 역할인 ‘교육’의 기능도 퇴색되고 말 것이란 경고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대학생들은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 자녀가 대학 진학을 위해 부모의 지위를 이용하고, 편법을 자행했다는 의혹은 위법 여부를 차치하고 ‘금수저’ 논란을 또 다시 불러 일으켰다. 부당한 인권 탄압에 대한 관심에는 국경이 없었다. 중국 정부에 대항하는 홍콩의 대학생이 주축이 된 시위대들이 극한의 탄압을 받자 국내 대학생들도 힘을 보태는 등 부조리한 현실에 함께 아파했던 한 해였다.

조국 교수 자녀의 입시 특혜를 두고 서울대에서 학생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조국 교수 딸의 입시 특혜 의혹을 두고 서울대에서 학생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조국 교수가 쏘아올린 ‘입시 특혜’ 논란=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본격적으로 특혜 논란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것은 딸의 입시 특혜다. 최근까지 의혹으로 불거진 내용을 정리하면 조 교수와 아내인 정경심 교수는 딸의 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아는 교수의 자녀와 일종의 ‘품앗이’를 했다. 연구실의 인턴으로 고용하는가 하면 친한 교수에게 부탁해 논문의 주요 저자로 이름을 올리도록 해줬다. 또 정 교수가 있는 동양대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위조, 제출해 도움을 줬다는 주장이다.

대한병리학회는 조국 교수 딸의 제1저자 논문 사건을 연구 부정행위로 보고 논문을 취소하기에 이르렀고, 표창장 위조 사건은 현재 법리를 다투고 있다. 학생들은 분노했다. 고려대에서는 조국 교수의 딸 입학 취소를 촉구하는 학생들의 집회가 열렸고, 서울대에서는 정의를 강조하던 조국 교수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문제는 조국 교수의 이런 행위가 부조리한 한 사람의 사례가 아니라는 데 있다. 교육부가 15개 대학을 대상으로 미성년 저자 논물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인 결과 연구부정으로 확인된 논문은 15개, 연루된 교수는 11명으로 밝혀졌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잇따랐다.

한국사회에서는 이 같은 ‘입시 짬짜미’가 특별할 것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그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교육계에서는 ‘논문 품앗이’, ‘인턴 품앗이’, ‘스펙 품앗이’가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조국 사태는 결국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금수저 전형’이란 공식만 세워놓은 채 ‘정시 확대’ 등 교육 정책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홍콩 민주화 지지 시위···한국 대학가에도 영향 = 시작은 홍콩 대학생들의 격렬한 시위였다. 올 초 민주화를 위한 홍콩의 시위는 거의 매일같이 보도되며 심각성을 알렸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국내 대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려대, 부산대, 연세대, 전남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에서는 대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이며 홍콩의 시위대를 응원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 지지 의견에 반대하는 중국 유학생 등의 대자보 훼손, 지지 시위 방해, 폭력 발생 등 물리적인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산대, 연세대 등에서는 현수막을 무단 철거하거나 훼손하는 사건이 있었고, 명지대에서는 한국인 학생과 중국인 학생 사이 폭행도 벌어졌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대자보 훼손에 대한 규정이 없어 대자보가 철거되거나 훼손되더라도 별다른 징계 절차를 밟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 대자보를 학교가 철거하거나 사전 승인 요청을 요구하면서 때 아닌 ‘검열’ 논란도 뒤따랐다.

대학의 변화와 혁신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교수들은 ‘노조할 권리’를 얻었다. 사회의 지도층으로만 여겨졌던 교수들도 ‘노동자’로 인정받으며 노조를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수 사회의 커다란 변화다. 대학은 혁신의 기로에 섰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경쟁력을 상실한 폐교 대학이 늘어나면서 자생을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해졌다.

헌재 판결 이후 지난 10월 사상 최초 국공립대교수노조가 출범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헌재 판결 이후 지난 10월 사상 최초 국공립대교수노조가 출범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교수도 노동자”···교수노조 출범= 올해는 교수들에게는 의미가 큰 한 해였다. ‘노동자’로 인식하지 못했던 교수들이 비로소 ‘노조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헌재는 그간 대학교수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교수가 노동자인가’를 두고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교원의 노조 가입은 헌재 판결로 어느 정도 사회적·법적 인정을 받은 셈이다.

이에 사립대에서는 원광대가 최초로 교수노조를 출범했다. 10월에는 사상 최초 국공립대학 교수노조가 탄생했다. 이들은 “교수도 헌법이 보장하는 지식노동자”임을 강조하며 기득권 추구보다는 국공립대의 교육환경 개선, 대학 공공성 확대, 공정 사회 구축이라는 대의를 목표로 뒀다. 11월에는 서울대도 교수노조의 탄생을 선포했다. 그밖에도 현재 서울을 비롯한 지역 사립대에서도 간담회를 통해 노조 설립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교원노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교원노조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의원들도 교원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법안이 개정되기까지는 세부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문 닫는 대학 막자···대학마다 ‘혁신’ 뜨거운 키워드= 올해 대학가의 최대 키워드의 하나는 ‘혁신’이다.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지역 사립대는 혁신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교육부는 지난 8월 ‘7대 혁신과제’를 발표하면서 ‘지자체와 지역대학 플랫폼’을 구성하는 지역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대학혁신의 지원 방안으로 지역대학과 지자체 중심의 지역 혁신을 강조했다. 2020년부터는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을 신설하고 지역단위 협업 플랫폼을 구성, 각 지역별 대학의 여건에 맞는 발전계획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실효성이 빠진 대안이란 지적이 우세하다. 교육부가 2021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지표 배점을 대폭 확대함과 동시에 이를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할 것이란 방침이기 때문이다. 또 사실상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지역 경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자체와의 연계가 활발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학들은 자생방안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일부 지역대학들은 지자체에 기업까지 연계한 지역상생 방안을 찾는가하면 총장이 직접 지역사회와의 상생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면서 대학은 지식과 인프라를 제공하고, 지자체는 지원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대학이 전면에서 지역 혁신을 이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지자체나 기업 등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