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악화·구조조정·규제완화 등 장기 적체 이슈 다수
지난해 일부 성과도…여전히 해결과제로 남아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2020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대학가의 미래 전망은 희망보다 절망에 가깝다. 고등교육  이슈가 산적해 있음에도 확실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 성과가 아주 없지 않았다. 또한 올해부터 바뀌는 정책도 있다. △학문후속세대 연구지원(인문사회분야) △4단계 두뇌한국(BK) 21 사업 △(가칭)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 △산학 연계교육(LINC+ 사회맞춤형, 조기취업형 계약학과) △대학생 글로벌 현장학습 지원 △폐교대학 종합관리사업 등 23건의 정책이 개선된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에 고등교육 정책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2020년에 4·15 총선이 실시된다. 현재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총선 공약 마련에 분주하다. 본지는 4·15 총선을 앞두고 신년기획으로 정치권에 바라는 대학가 아젠다를 살펴봤다. 대학가 아젠다는 정치권이 4·15 총선을 기점으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대학의 그늘, 대학의 약자 보호 시급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故 김정희 한예종 겸임교수의 사망과 관련해 강사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故 김정희 한예종 겸임교수의 사망과 관련해 강사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비극 되풀이되는 강사법·개선되지 않는 청소노동자 문제= 한예종에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던 별신굿 명인 고 김정희씨가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이 김 교수의 비극이 강사법에서 태동한 것이라 지적한다. 강사법 시행 이후 한예종에서 ‘석사 학위 이상 소지한 강사 채용’을 이유로 김씨를 해고했다는 주장이다. 8년의 유예 끝에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강사법은 2019년 대학가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학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간강사를 해고하면서 소규모 강의는 줄어들고, 대규모 강의가 늘어났다. 전임교원들의 책임강의 시수를 높여 강사법의 여파를 막으려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학생들의 수업권 박탈은 물론 학문후속세대의 성장이 가로막힐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부의 올해 예산안에 따르면 강사법 시행에 따른 강사 처우개선을 위해 국립대는 약 1517억 원이 확정됐지만 문제는 사립대다. 전체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는 610억원이 편성될 예정이다. 여러 비정규직교수 단체에서 주장하는 필요 재원 3000억원대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현실성 있는 대안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대학은 계속해서 비용을 문제로 강사의 수를 줄이려 할 것이고, 강단을 떠나는 시간 강사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는 현행 강사법의 수정과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안의 핵심은 방학기간 중 임금지급이다. 현재 강사법에서 명시하는 ‘강사의 방학 중 임금 지급’은 4주간 필요 예산의 70% 규모다. 강사노조는 최소 1139억원에서 최대 3392억원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학들의 어려움도, 강사들의 어려움도 해결할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그런가하면 대학의 청소·시설 노동자들도 차가운 새해를 맞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쉬다가 사망하는 사건으로 한 차례 주목을 받긴 했지만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도 대학 청소노동자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실태조사를 약속했다. 얼마 전 교육부가 국립대 41곳과 사립대 34곳으로부터 청소 노동자 휴게 공간 개선계획을 제출받았지만 개선의지를 밝힌 사립대는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대학평가나 재정지원 등으로 연계하기도 쉽지 않아 대학 노동자 휴게 공간 개선이 실질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대학 청소노동자의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풀리지 않는 재정난, 해결방법은?

지난해 11월 열린 사총협 정기총회에 참석한 총장들의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지난해 11월 열린 사총협 정기총회에 참석한 총장들의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사립대 총장, 등록금 인상 강력 주장…고등교육교부금법 제정 시급=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지난해 11월 정기총회를 열고 등록금 인상 추진 의사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총장들은 결의서를 통해 “등록금 동결 정책으로 대학재정은 황폐해졌고, 교육환경은 열악해졌다”며 등록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당장 대학들은 교육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사총협 결의 이후 본지 대학팀 취재 결과 대부분의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대학들이 교육부 감사나 국가장학금 연계 등으로 계획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사총협 결의 이후 불허 입장을 내비쳤다. 등록금과 국가장학금 Ⅱ유형 연계 정책을 고수하면서 등록금 인사·동결을 계속 유지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교육부의 적립금 감사가 이뤄진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교육부는 부인했다. 앞으로도 대학들과 협의해 대학 재정을 확충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학 재정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호소가 계속되고 있다. 교육의 질 제고와 대학경쟁력 향상을 위해 등록금 인상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2009년 이후 대학 등록금은 11년간 동결돼 왔다. 원칙적으로대학들은 고등교육법 등이 정한 한도 내에서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인상할 수 있다. 고등교육법에는 각 대학의 등록금 인상률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1.5 배를 넘을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2020학년도 등록금 인상률은 1.95% 이하다. 교육부는 대학의 과도한 적립금을 지적하고 있지만 대학별, 지역별 편차가 크기 때문에 대학 재정난 극복을 위한 정책이 시급해 보인다.

특히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7% 수준으로 평균이 1.1%에도 못 미친다. 초·중등 교육과정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예산을 배정받지만 고등교육은 관련법이 없어 매년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대학들은 교부금 법안이 통과되면 등록금 동결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위기의 대학,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대학노조가 일방적인 대학구조조정 중단,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대학노조가 일방적인 대학구조조정 중단,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평가 모드 돌입, 2021진단…대학구조조정 가속화= 2021년 시행 예정인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2021진단)을 앞두고 대학가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교육부가 2021진단에 신입생 충원율 평가 비중을 이전보다 3배 확대하기로 하면서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대학들이 정원을 스스로 감축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라지만, 신입생 충원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방대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가 이전 1·2주기 평가를 통해 대학을 등급별로 구분한 뒤 하위 대학들을 대상으로 정원감축을 추진하고 재정지원사업과 학자금 대출 등에서 불이익을 주자 대학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교육부는 2021진단에서는 대학 자율의사에 따라 기본역량진단 평가 참여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점수 향상과 전임교원 확보율 배점 향상이다.

문제는 이 같은 평가 방식이 수도권 대학의 편중을 초래하고, 지역 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10일과 11일 열릴 예정이었던 2021진단 편람 시안 설명회는 전국대학노동조합(대학노조)와 전국교수노동조합의 점거 농성으로 무산됐다. 대학노조는 2일 신년사를 통해서도 “지방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현재의 대학구조조정 방식은 재고돼야 한다”며 “대학평가와 연동한 학교 폐교가 아니라 가급적 대학을 살리고 고등교육의 내실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립대에 정부 재정을 지원해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됐던 공영형 사립대도 좌초 위기에 빠졌다. 교육부는 지난해 정책연구를 거쳐 올해 시범운영을 계획해 당초 87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전액 삭감했다. 정부 집권 4년차에 접어들면서 국정과제로 삼았던 정책이 시행조차 어려워진 상황이다.

아직 옅은 불씨는 남아 있다. 교육부가 ‘공영형 사립대 실증 연구’ 연구용역 사업을 재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형 사립대 정책연구 희망 사립대 3곳을 공모·선정할 계획이다. 대학당 1억5000만원을 연구비로 책정했다. 이번 사업은 정책연구로 운영 경비를 지원받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시범 연구로 공영형 사립대의 필요성을 부각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학가에서는 이번 정권 내 당장 실현은 어렵겠지만 다음 정권까지 공영형 사립대 정책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대학의 규제완화가 위기 해소의 열쇠
신산업 규제·해외 인재 유치 걸림돌도= 기존의 학문, 기존의 대학 형태로는 혁신이 어렵다는 위기감이 대학을 점령했다. 이에 대학들은 신산업 분야의 학문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해외 인재를 유치하거나, 해외로 내보내는 등 각종 도전에 나섰다.

미래 유망산업으로 인공지능(AI) 분야가 각광을 받으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주도로 AI대학원 설립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각종 규제로 신산업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I대학원의 교수 정원을 채우지 못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은 낮은 보수 등의 문제로 교수 채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로 기업에서 활동하는 유망 인재들의 보수가 매우 높지만 대학에서 이들의 급여를 충당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과기정통부는 AI 관련 학과 교수의 기업 겸직 허용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보다 과감한 투자와 규제완화가 함께 투입돼야 신산업으로의 변환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해외 인재 유치에도 규제가 걸림돌이 됐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외국 대학 유치를 적극 추진해 왔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대학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학협력사업은 물론 국가연구개발 과제 등에도 참여가 어렵다. 이름만 외국 명문 대학일 뿐 이들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들은 이처럼 교육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각종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 완화는 정치권이 주목해야 할 고등교육의 또 다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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