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설 역주 《혜빈궁일기》

[한국대학신문 신지원 기자] 현전 유일의 조선시대 궁궐 여성처소 일지인 《혜빈궁일기》가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역주로 출간됐다. 정치, 행정, 문화적으로 조선의 중심이었던 궁궐에서 여성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매우 적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세자의 부인 혜빈궁 홍씨가 머물렀던 처소의 공식 일지인 《혜빈궁일기》의 역주서를 통해 궁궐 여성의 일상에 관해 엿볼 수 있게 됐다.

《혜빈궁일기》는 혜빈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데, 첫 번째는 문안 인사와 제사 등 궁중 의식이고, 두 번째는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 생활 정보이며, 세 번째는 담당 내관, 내인, 여종 및 별감 등에 대한 인사 관리다. 구체적으로 보면 간장과 김치를 담그는 일, 옷감을 나누고 염색을 하는 것 등에 대한 것과 단오, 유두, 중양절에 진상하고 하사한 물건 등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특히 내관과 내인이 어떻게 근무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등은 다른 기록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내용이다.

    ◇메주로 간장 담그는 날

   2월 10일은 간장을 담글 메주를 나누어 주는 날이다. 1765년 같은 날에도 메주를 나누어 주었다. 『만기요람』을 보면 해마다 각궁에 지급하는 정례가 기록      되 어 있는데, 임금, 왕비, 왕대비 외에는 혜빈궁과 가순궁(嘉順宮)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순조 대의 것이므로 임금의 어머니 가순궁과 할머니 혜빈궁까      지  특별히 기록했는데, 일정 기간(날, 달, 넉 달, 해)마다 공상하는 물품 외에 간장과 김치[沈醬沈菹]는 별도로 적었다. 『승정원일기』 1824년 2월 26일 조를      보면, 혜빈궁이 죽은 다음 그 궁궐에 공상하던 것을 줄이는 기사가 있는데, 거기서도 매일 바치는 것 외에 간장과 김치는 따로 기록했다. 그만큼 한국인의 식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간장과 김치이다. [∙∙∙] 『혜빈궁일기』에서 메주는 2월 10일, 김치 담글 재료는 8월 10일에 공상하니, 메주와 김치 재료를 봄, 가   을에 나누어 공상함을 볼 수 있다. (47쪽 해설)

혜빈궁일기_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혜빈궁일기_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혜빈궁일기》는 1764년과 1765년, 두 권에 불과한 기록이지만 유사한 다른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독보적 가치를 지닌다. 이 자료는 이두식 한문에 행초로 필사된 부분이 많고 공문서 투식과 당대의 정치,역사적 배경까지 알아야 이해가 가능해 그간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따라서 꼼꼼하게 주석과 해설을 추가해 당대의 정치, 문화적 배경을 알 수 있도록 한 주석서의 출간은 의미가 크다.

정병설(鄭炳說) 교수는 《완월회맹연》과 같은 한글고전소설로부터 출발해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조선시대의 인간과 문화를 탐구해 왔다. (서울대출판문화원 / 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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