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상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18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대학교수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교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2조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어서 다툼의 여지가 없다. 이제 입법기관은 지체 없이 대학교수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보장하는 법률개정을 해야 한다. 헌재는 현행 법률의 유통기한을 2020년 3월 30일로 지정했다. 이는 위헌으로 판정된 법률을 잘 정비할 시간을 준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률개정 시한을 못 박은 것이기도 하다.

대학교수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교수도 대학이라는 직장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이며, 임금수준과 근로시간 및 근로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으니까 분명히 노동자다. 교수가 노동자임은 OECD에서 인정하는 것으로서 유독 한국 교수들만 아닐 리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교수들의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하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웬만한 나라에는 교수노조가 다 있고, 많은 교수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과 교육정책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국제노동기구(ILO)와 OECD에서는 한국정부에 교수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권고를 오래 전부터 해왔다.

교수에게 도대체 왜 노동조합이 필요한지 묻는 사람도 있다. 교수의 주된 업무는 교육·연구·봉사다. 교육은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며, 연구는 학문연구자가 행하는 인류문명에 대한 기여를 말하고, 봉사는 지식인으로서 지역사회와 학문공동체에 바치는 약간의 헌신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잘 수행하는 것이 훌륭한 교수이며, 이는 개별 교수들이 한결같이 바라고 있는 이상적 상(像)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수도 생활인이기에 가족을 부양하는 데 충분한 임금이 지급돼야 하며,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하고, 상식적 수준의 후생복지가 제공돼야 한다. 한 마디로 노동자로서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보장돼야 안정적으로 교육·연구·봉사의 길에 매진할 수 있다.

대학외부에 있는 분들은 교수들이 아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외의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은 후 30대 중후반에 이르러 교수직에 임용돼도 대기업 신입사원보다 초봉이 적다. 시간강사를 비롯해 기금교수, 산학협력중점교수, 강의전담교수 등 종류도 다양한 비정년트랙교수들의 임금과 근무조건은 열악하고 신분도 불안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교육·연구·봉사에 전념하기는 정말 어렵다. 문제는 대학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모든 교수들의 신분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헌법재판소조차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제31조 제6항에 따라 교원의 임용·복무·보수에 관하여 법률에서 정하고 있으나 대학 교원 임용 제도는 전반적으로 대학 교원의 신분을 보호하기보다는 열악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천되어 왔다”고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교수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는 교육당국의 고등교육정책과 대학당국 및 사립학교재단의 대학운영방침에 의해 변동이 생긴다. 교수 각자가 교육당국과 사학재단을 상대로 자신의 지위를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인 교수들이 단결해서 이에 대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 단결권을 보장해야 한다. 단결권은 교수들의 열악한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좋은 강의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학문과 교육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단결권은 교수노동자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권리다. 헌재의 결정문에서도 “...대학 교원들이 향유하지 못하는 단결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근로3권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권리이다”며 이를 확인하고 있다. 입법권자는 하루 속히 단결권을 보장하는 법률개정을 해야 한다.

또한 헌재의 결정문은 교수들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서는 해당 대학뿐만 아니라 “교육부 혹은 사학법인연합회를 상대로 근무조건의 통일성 등에 관하여 교섭”할 수 있어야 있어야 함을 적시하고 있는 바,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교수노조에 단체교섭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결권만 가지고는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저하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헌재의 결정문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둘째, 교수노조의 조직형태가 산업별 조직이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기업별조직 형태인 개별대학 노조는 해당 대학과는 교섭을 진행할 수 있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단체교섭 상대인 교육부나 사학법인연합회와는 교섭을 할 수 없다. 이들 기관과 교섭을 행할 수 있는 조직은 산업별 조직이다. 헌재의 결정문은 이렇게 친절하게 교원노조법 개정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은 2001년 11월 출범 이래 무려 18년 동안을 노동조합이면서도 법적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채 활동했다. 이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시장주의 고등교육정책도입 반대, 반값등록금정책 견인, 개별대학의 교육민주화노력 지원, 교권수호 투쟁, 시민사회단체 지원과 연대 등 많은 일을 해왔다. 이제 합법화 시한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입법권자는 교수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보장 및 산업별조직형태 채택을 포함하는 법률개정을 조속히 완성하길 강력히 요구한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