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通] 자연을 닮은 정책
[대학通] 자연을 닮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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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2019년 12월, '강사법 개정'에 해고 통보받은 전통예술인 K씨가 사망했다. 석사 이상 학력자만 뽑겠다는 규정에 20여 년 출강하던 대학에 더 못 나가 신변 비관을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뉴스가 눈에 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기본역량진단을 비롯해 대학혁신지원사업, 국가장학금Ⅱ유형 등 정부사업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대정부 건의문을 정부기관에 제출했다는 내용이다. 대교협은 대학기본역량진단에 대해 “경쟁력 있고 특성화돼 있으며, 재정이 건실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 등도 획일적 상대평가로 인해 탈락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대학의 다양성과 건강한 고등교육 생태계를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떠한 정책이든 그 바탕에는 획일적 기준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기준은 산술적인 평균이나 다수의 논리를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균이나 다수와 같은 지표는 전체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 지표의 하나일 뿐이다.

조직 속에 있는 각각의 실체는 이 지표와는 관계가 없는 고유한 존재다. 그리고 지표는 그것을 근거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A)도 있지만,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상황(B)도 있다. 현실은 상황 A와 B사이에 놓여 있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상황 A에서나 적용 가능한 정책을 상황 B에서 시행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소대의 군인이 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강의 가장 깊은 곳은 160㎝이고, 소대원 전체의 평균 키는 170㎝다. 소대장이 소대원의 평균 키를 근거로 모두 강을 건너도록 명령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키가 160㎝ 되지 않는 대원은 큰 화를 당할 것이다. 소대장은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을 기준으로 강을 건널 대책을 세워야 함이 마땅하다.

강사법도 마찬가지다. 석사 이상 학력자만 강사가 될 수 있다는 제한은 너무 상황 A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단순히 학위 하나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책은 그 자체가 획일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고, 정책 입안자는 이 속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대학이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또 정부가 대학을 대상으로 정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또 정책 입안자가 정책의 현장과 멀리 떨어질수록 획일적 속성은 더 강해진다. 그것은 현장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보지 못하고 주로 지표에 의지해 정책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구체적이고, 한두 개의 기준과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정책을 만들 때는 반드시 정책이 현실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인지능력은 좀 더 현실적인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한 기초 동력이 된다. 대상자의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도록 할 것이고, 정책의 획일적 기준을 보완해서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유연하고 섬세한 정책을 마련하도록 할 것이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잘 만들어진 나무데크길 한 가운데 동그란 구멍 사이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모습과 마주할 때가 있다. 길을 만들 때 조금은 더 수고스럽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보존하려는 그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산의 주인은 나무이고 인간은 그 산을 잠시 다녀가는 존재다. 그 점을 잊으면 그 한 그루의 나무는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다니는 둘레길은 처음엔 산의 굴곡과 나무 사이를 따라 구불구불 자연의 길을 따라 걸어 다녀서 만들어진 것이다. 정책을 만드는 일도 그러한 둘레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닮으면 좋겠다. 내가 만든 정책이 한 그루의 나무도 해치지 않고, 자연의 길을 따라 나무와 함께 숨을 쉬는 그러한 정책이 되기를.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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