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 군 장학재단 ‘SKY’ ‘의치한’ 등에 장학금 지급
‘지역인재 육성’ vs ‘타 지역 대학 진학 장려’ 엇박자 개선 계기 기대

(사진=한국대학신문DB)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명문대’나 ‘의치한’에 진학한 관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학벌주의’를 조장한 지방자치단체들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합리적 기준 없이 특정 학교나 학과 진학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학벌에 의한 차별 소지가 있다며 개선을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지역균형인재의 경쟁력 강화와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대육성법’이 시행 중이지만, 정작 지자체들은 장학금을 통해 특정대학 진학을 장려하는 ‘모순’을 개선할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 “특정대학 장학금 지급은 학벌 차별” 의견 표명 = 인권위는 11일 전국 34개 군(郡) 장학회를 대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특정 대학이나 의대·치대·한의대 등의 특정 학과에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특별대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특정대학교·특정학과를 진학했다는 이유로 입학금이나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대입 경쟁 결과만으로 학생의 능력과 가능성을 재단하는 것”이라며 “‘학벌주의’가 반영된 장학금 지급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학벌이 중요하게 작용할수록 고학력을 얻으려는 교육수요가 유발된다. 이름 있는 학교 입학에 몰입하게 되면서 초·중등 교육은 소위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 위주 교육에 치중하게 된다”며 “이는 대학 간 서열화와 지방대학 붕괴로 이어진다. 학벌로 인한 심리적 박탈감은 사회 계층 간 단절·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로 학벌 중시 관행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다. 

■38개 장학재단 장학금 지급 차별 ‘진정’…34개 장학재단 ‘개선 의견’ = 인권위가 장학금 지급을 놓고 의견을 표명한 것은 한 시민단체의 ‘진정’에서 비롯됐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2년 전 군 단위 지자체 38개 장학재단의 ‘장학금 지급 차별’ 행위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했다. 

사교육걱정은 “군 단위 지자체가 운영하는 장학재단 74개 중 자료를 확보한 68개 대학의 선발 공고문을 조사, 38개 장학재단이 명문대 진학이라는 명목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실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정을 기반으로 인권위가 조사를 벌인 결과 실제 38개 장학재단은 특정 대학이나 학과를 진학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이나 입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대학에는 고려대·서울대·연세대 등의 서울권 주요대학이나 KAIST·포스텍 등의 과기특성화대가 주로 포함됐다. 특정 학과는 ‘의치한’으로 불리는 의대·치대·한의대를 비롯해 약대·수의대 등이었다.

최초 진정에 따른 조사 대상은 38개 기관이었지만, 인권위의 의견 표명 대상이 된 기관은 34개로 줄었다. 조사 과정에서 장학금 지급 기준을 바꾸기로 결정한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창장학회 △구례군인재육성기금 △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무주교육발전장학재단은 대학·학과를 지정해 지급하는 장학금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실제 사례로 보면 구례군인재육성기금은 “특정학교 지정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기준이 차별적 조항에 해당된다는 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2018년까지만 해당 장학금을 유지하기로 했다. 무주교육발전장학재단은 특정대학 진학자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고, 무주권에 주소를 둔 대학교 신입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지방대육성법과 충돌 ‘모순’ 해결될까…지방대학은 ‘호평’ = 특정 대학이나 학과를 지정해 지급하는 지자체 장학금은 그간 여러 차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지자체들은 지역 내 교육 경쟁력을 높이고, 우수 학생들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 명분을 내세웠지만, ‘학벌주의’라는 비판은 이번 인권위의 의견과 동일하게 유효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문제가 되는 것은 ‘명문대 장학금’이 지방대육성법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인 지방대육성법은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 간 균형발전을 목표로 만들어진 법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우수인재들이 대거 유출됨으로 인해 지역 발전을 꾀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 지역 고교 출신 등을 선발하는 지역인재전형의 근거를 둔 것이 바로 지방대육성법이다. 지역인재의 공무원 임용, 공공기관 채용 등의 기회도 지방대육성법으로 인해 확대됐다.

지자체에서 서울권 주요대학 등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별도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이처럼 지역균형발전과 지역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지방대육성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치다. 법까지 제정하며 지역인재를 양성토록 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 지역 지자체는 타 지역으로 학생들을 진학하라며 등을 떠밀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방대학들 입장에서도 지자체 장학금은 달가울 리 없다. 학령인구 감소로 당장 신입생 충원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지방대학들 입장에서는 타 지역으로의 진학을 권장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정작 명문대 장학금을 지급하는 지자체 가운데 지역 내 대학 진학에 따른 장학금을 지급하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 실정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대학의 사정을 지자체가 나서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인권위의 의견 표명에 따라 지방 대학들은 호평을 아끼지 않는 모양새다. 한 지방대학 입학처장은 “서울권 대학 못지않은 경쟁력을 가졌다고 자부하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지역과 대학은 서로 상생해야 한다. 대학이 사라지면 지역 경제부터 휘청이기 마련이다. 지자체가 관내 대학을 두고, 학생들에게 서울권 대학으로의 진학을 부추기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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