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실태조사 ‘팩트 체크’ 바탕, 공정성 강화 방안 ‘문제점 지적’
비교과·자소서 폐지, 고교교육과 학종 위축 우려
근거 미비 수능위주전형 확대, 교실수업 문제풀이 위주 퇴행 ‘원흉’

입학처장들이 정부의 대입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는 16일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전반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정기총회 및 세미나에 참석한 입학처장협의회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입학처장들이 정부의 대입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는 16일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전반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해 정기총회 및 세미나에 참석한 입학처장협의회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해 전국 대학 입학처장들이 “학생 교육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대입정책의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한다”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대입 공정성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담론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정책은 대입 생태계를 훼손할 것이 자명한데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다.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으며, 신뢰해야 할 평가자료인 학생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대학에 전가해 고교-대학 불신을 정부가 조장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입학처장들은 먼저 정부가 대입 전형자료의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며 제시한 비교과활동·자기소개서 축소·폐지 방안이 고교교육(공교육)과 학생부종합전형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사교육비 증가와 교육 불평등 심화로 이어지는 수능위주전형을 확대하는 것은 과정·학생참여 중심의 교실수업을 문제풀이 위주로 퇴행시키는 등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될 것이라고 봤다. 평가 투명성·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제시된 외부 공공사정관은 도입 근거부터 찾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평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할 전임 입학사정관 확충은 정부 지원이 필요하지만 등한시되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전국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입학처장협의회)는 15일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한 대학의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28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공정성 강화 방안)은 문제가 많으므로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 입학처장들이 내놓은 입장문의 골자다. 

기존에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여러 곳에서 나왔다. 입학처장협의회도 공정성 강화 방안이 나온 직후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공론화를 통해 2022학년 수능위주전형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이 권고된 상황에서 이를 시행하기 전 재논의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025학년 고교 학점제와 성취 평가제가 예정돼 있는 바 이에 맞춰 안정적으로 대입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공정성 강화 방안이 발표된 시기로부터 이미 세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이처럼 뒤늦은 시점에 입학처장협의회가 재차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뭘까. 입학처장협의회는 의견 조율로 인해 불가피하게 입장 정리가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학처장협의회는 “전국 대학의 입장을 조율·정리해 대입 공정성 강화를 위한 대학의 의견을 표명(한다)”고 했다. 

입학처장협의회의 설명처럼 이번 입장문에는 대학 입학 현장의 목소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담겼다. 입학처장협의회는 먼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이 발표되기 전 실시된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에 대한 ‘팩트 체크’부터 실시했다. 교육부가 학종 실태조사 결과 “대학의 학종 불공정 요소를 확인”했다는 것을 근거로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기에 전제가 되는 실태조사 결과를 검증할 필요가 컸다. 

입학처장협의회에 따르면, 공정성 강화 방안은 ‘근거’부터 흔들린다. 교육부는 공정성 강화 방안 곳곳에 학종 실태조사 결과를 근거로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학종 실태조사 결과 곳곳에는 문제점이 산적해 있었다. 

예컨대 교육부는 고교 프로파일이 특정 고교에게 특혜나 유리함을 주는 것처럼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입학처장협의회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고교 교육환경과 여건을 고려해 학생들을 종합평가하기 위해 고교 프로파일을 활용하는 것을 놓고 교육부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정확한 수치 산정이 불가능한 평가시스템 접속 기록을 근거 삼아 평가 신뢰성을 흠집 낸 것을 비롯해 대입전형 전반에서 나타나는 고교유형 서열화 문제를 학종에만 한정지어 문제 삼은 점, 지역별 합격자 비중이나 국가장학금 수혜율 등 학종이 수능에 비해 우수성을 지닌 부분들은 애매모호하게 발표가 이뤄진 점 등도 입학처장협의회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입학처장협의회는 이같은 학종 실태조사 관련 ‘팩트 체크’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대입 전형자료 공정성 강화 △평가 투명성·전문성 강화 △대입전형 구조개편까지 공정성 강화 방안을 이루는 세 줄기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입학처장협의회의 진단이다.

대입 전형자료 공정성 강화 관련 문제로 지적한 것은 학생부 비교과 활동과 자기소개서 축소·폐지 방안이다. 학생부 비교과 활동과 자기소개서 축소·폐지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입학처장협의회는 비교과와 자기소개서를 축소·폐지하는 것은 미래 지향 고교 공교육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종합적 정성평가를 어렵게 만들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과 일치하는 학종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평가 투명성·전문성 강화 관련 입학사정관들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정부가 평가 투명성 강화를 위해 도입하겠다는 외부 공공사정관은 역할·신분이 모호하며, 평가 전문성 관련 기존 사정관보다 우수하다는 객관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평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수의 전임 입학사정관을 확보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도 촉구했다. 

입학처장협의회는 ‘정시(수능위주전형) 확대’로 표현 가능한 대입전형 구조개편에 관해서는 작정한 듯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수능위주전형이 사교육비를 증가시키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각종 분석 자료를 외면하고, 오히려 이를 확대해 교실 수업을 문제 풀이 위주로 퇴화시킨다”는 것이 입학처장들의 교육부를 향한 일갈이다.

입학처장협의회는 공정성 강화 방안에 이토록 문제점이 즐비한 것은 ‘여론’이 교육정책을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입학처장협의회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여론을 교육정책의 근거로 삼지 말고, 초·중·고교 학생들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대입정책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고교 프로파일 전면 폐지에 대해서는 재차 우려를 표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전면 시행을 통해 학생의 교과 선택권이 평가에 의미 있게 반영된다. 개별 학교 교육과정을 참조할 수 있는 공적 정보가 평가 시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 입학처장협의회의 주장이다.

학생부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대학에 떠넘기는 것은 고교-대학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란 지적도 이어졌다. 입학처장협의회는 “대입전형 평가를 위한 전형자료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중요함에 동의한다. 하지만, 학생부에 대한 관리·감독·감시 책임을 대학에까지 부과하는 것은 권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 고교-대학 간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입학처장협의회의 지적처럼 학생부는 마치 대학이 관리해야 하는 평가지표처럼 여겨진다. 학생부 관련 논란이 벌어지면 대학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은 학생부를 검증할 권한이 없다. 고교에서 평가한 학생부를 대학이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전제가 없다면, 현행 대입제도는 정상 작동할 수 없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입학처장협의회는 ‘대학의 자율성’도 언급했다. “대학이 고유 인재상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은 대입전형 운영의 전문성·공정성·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을 통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입학처장협의회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대입운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따. 입학처장협의회는 “대입 공정성 강화에 대한 제도 개선이라는 담론에 한 마음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대입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을 실현 가능한 정책·제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피력한다.투명하고 예측가능한 대입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입장문을 낸 입학처장협의회의 정식 명칭은 ‘전국대학교 입학관련처장협의회’다. 대학의 입학 관련 정책·업무를 총괄하는 입학처장·입학본부장 등의 모임으로 여타 대학 협의회와 마찬가지로 권역별로도 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이번 입장 발표에는 전국 협의회와 서울·경기·인천지역을 대표하는 박태훈 국민대 입학처장을 비롯해 △김윤호 목원대 교학부총장(대전·세종·충남·충북지역 입학관련처장협의회장, 이하 지역만 표기) △김종설 울산대 입학처장(부산·울산·경남·제주) △남수경 강원대 입학본부장(강원) △손홍민 호남대 입학관리처장(광주·전남·전북) △최종호 경일대 입학처장(대구·경북) 등 전 협의회 회장들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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