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정재영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수서정리팀 부장
정재영 부장

한겨울 계단에 쌓인 눈을 치운 사람과 그 계단을 오르는 사람의 노고는 같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단의 눈을 치운 사람보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더 많이 불평하는 것을 보게 된다. 너무 가파르다는 등, 눈이 깨끗이 치워지지 않았다는 등. 추운 날씨에도 힘겹게 오를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한 사람의 노고에 비하면 그런 말들은 한낱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도서관의 현실을 간과할 수 없어 관련법 제정을 위해 수십 번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하고 교육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 및 단체들과 설전을 벌여가며 대학도서관진흥법이 제정되도록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영예나 수고에 대한 보답을 바란 것도 아니고 소속 대학이나 도서관에서 알아주는 일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도서관진흥법이 제정되자 대학은 자율적인 운영을 내세우며 정부에서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을 하기 시작했고, 당사자인 도서관은 법조문 하나하나를 거론하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법 제정 취지보다 법조문의 문제점을 먼저 거론하고 법으로 권고한 최소한의 기준을 이해하고 정비하려 하기보다 변칙을 통해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법 제정 초기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이야 여러 의견을 듣고 추후 개정하면 되는 일인데, 법 제정 불필요성과 불합리성을 주장하는 것은 쓸어 놓은 눈보다 남아 있는 눈에 먼저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대학도서관 평가의 목적은 대학과 대학도서관이 자기 점검을 통해 스스로 문제점을 보완하고 개선 방안을 찾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평가 결과에 따른 정부의 직접적인 제재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도서관은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왜 평가까지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말로는 도서관을 대학의 심장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도서관의 인력과 자료구입비를 줄여 최소 기준만을 맞추려는 사람들은 대학도서관에 대해 불평할 자격이 없다. 도서관에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만 있으면 됐지 사서가 왜 필요하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감히 도서관을 대학의 기본이자 지혜의 전당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도서관의 현실에 대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자조 섞인 소리를 하는 사람들과 대학도서관의 현실을 개탄하며 울분을 토해 보지 않은 사람은 대학도서관 현실에 불만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남을 위해 수고를 자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불평할 자격이 없다. 남의 탓이나 하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고민하고 수고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법이다.

계단의 눈을 치우지 않았으면 눈을 쓸어 놓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며 묵묵히 올라갈 일이다.

대학도서관진흥법 제정은 물론 대학도서관계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다 운명을 달리한 전 서울대 도서관 김기태 팀장의 명복을 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