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택 계명문화대학교 교수(해군발전자문위원)

조규택 계명문화대학교 교수
조규택 계명문화대학교 교수

5성 해군 제독 체스터 니미츠(1885-1966)는 미 해군의 전설이다. 니미츠는 진주만 습격으로 패전에 몰린 미 해군을 수습, 미드웨이해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던 태평양함대 사령관이었다. 그는 이 공로로 미 해군 최초의 5성 제독이 됐고 이후 해군참모총장이 된다.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의 모든 전력이 총동원된 미드웨이해전을 통해 우리는 한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니미츠의 열린 의식과 경청이 일본제국 해군의 권위적이고 지시적인 문화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일본 연합해군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은 예하 제독들과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상작전에 대한 강한 집착과 독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진주만 공습을 주도했던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 중장이 함정과 군인들의 피로 누적으로 작전 연기를 주장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예상보다 큰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일본 해군 최고 지휘관이 참모장교들의 건의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반면, 니미츠가 이끄는 미 해군은 달랐다.

니미츠는 열린 리더십으로 구성원들의 견해나 건의를 신중하게 청취한다. 영화 「미드웨이」에서도 확인됐지만, 사령관 니미츠는 전임자(킴멜 제독)와 달리 해군 정보장교 레이튼 소령에게 주목한다. 레이튼은 일본 해군이 진주만을 폭격할 것이란 사실을 수뇌부에 전달했던 인물이다. 니미츠는 부임하자마자 진주만 패배에 대한 병사들의 사기를 회복시킨다. 나아가 정보장교 레이튼의 헌신적인 노력을 높이 치하하고 협조를 구한다. 레이튼 소령은 퇴근을 미루고 밤잠을 설치며 지휘관이 요구한 기밀을 해독‧분석, 가장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부하를 신뢰한 니미츠의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의 작전을 간파해결전의 미드웨이해전에서 압도적인 대승을 거둔다. 미 함대를 능가했던 일본 해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세계 최강의 항모전단과 함께 바닷속으로 침몰한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의 연합함대는 재기 불능의 상태로 전락하고 패전을 맞게 된다.

니미츠는 소령에 불과한 정보장교의 보고서와 권고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부하에 대한 신뢰의 리더십을 보였다. 레이튼의 보고를 토대로 니미츠는 남태평양에 배치했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그리고 산호섬 해전에서 크게 망가진 항모 <요크타운>을 임시 수리해 결전의 미드웨이섬으로 과감하게 이동시킨다. 정보를 통해 적의 이동 경로를 미리 알고 전력(戰力)을 요충지에 배치한 니미츠의 결단으로 미 해군은 크게 승리한다.

우리는 여기서 니미츠 제독의 리더십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즉,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교만의 의사 결정보다 구성원들이 심사숙고해 건의하거나 제안한 견해를 청취하려는 열린 리더십 말이다. 지금 창궐하고 있는 중국 우한의 코로나 19 사태를 보면서도 리더의 자질과 열린 의식을 생각하게 된다. 중국도 한 사람의 진정성 있는 의사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조기에 바이러스를 차단하거나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일수록 구성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견해를 청취하고, 종합적으로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미드웨이해전에서처럼, 일본 해군이 보여준 일인 독재의 전제적 지시나 명령은 종국엔 망하거나 패하게 된다. 니미츠처럼 부하들의 심사숙고한, 다양한, 창의적 대안을 수용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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