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이지은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이지은 양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이지은 양

1월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재학 중 경영 그랑제꼴인 ESCE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됐기 때문이다.

파리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시아권에서 코로나19 전파속도가 정점을 찍고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먼 유럽에서는 그 심각성을 체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내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18일(현지 시간) 기준 프랑스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7700명을 넘겼다. 휴교령과 이동 제한 조치가 내려졌고, EU·비유럽 간 국경 봉쇄 등 강경한 대응도 이뤄졌다. 대학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지고, 국경이 봉쇄되기까지 5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과 제재 속에서 프랑스는 지금 매우 혼란스럽다.

12일 무기한 휴교령, 급변한 분위기···손 놓고 있는 대학에 불만 가득 = 휴교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프랑스는 코로나 19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었다. 파리 시내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에 보도됐던 동양인을 향한 코로나19 관련 인종차별도 체감하기 어려웠다.

ESCE에서는 9일과 10일 양일간 떠들썩한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학교 측이 이탈리아·스페인·중국·한국 등을 방문한 학생들에게 14일 격리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 전부다. 학생들은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일주일간 이탈리아에 다녀온 학생도 버젓이 등교했다.

12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깜짝’ 무기한 휴교령을 발표하면서다. 휴교령이 발표되자마자 프랑스 내 분위기는 곧바로 반전됐다.

담화 직후 파리 시내를 걷던 중 나를 향해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는 제스처를 여럿 목격했다. 지하철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카프로 코와 입을 막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현지인도 여럿 보였다.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체감한 순간이다.

교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모인 국제 학생들은 패닉에 빠졌다. 영국·아일랜드·미국 등 일부 국적 친구들의 모교는 휴교령이 내려지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전면 취소했다. 스페인·독일 등 유럽 국적을 지닌 친구들은 빠르게 본국으로 돌아갔다.

ESCE 교환 학생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은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휴교령은 내려졌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앞으로의 학업 일정 등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국 학생들은 프랑스의 대학 시스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며, 학교에 향후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다중이용시설 폐쇄령 불구 경각심 부족, 카더라 소문에 사재기 시작 = 대학생들과 달리 정작 프랑스 국민들은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 현지 언론은 경각심이 전혀 없는 국민들의 태도에 화가 난 마크롱 대통령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해당 언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자국민들이 테라스에 모여 앉아 커피와 맥주를 즐기고 있다. 바보같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15일 가게·상점·레스토랑 등의 영업을 일시 중단하는 ‘다중이용시설 폐쇄령’이라는 초강수까지 뒀다.

하지만 프랑스는 한국보다 더한 ‘해학의 민족’이었다. 카페·레스토랑 등이 폐쇄되자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공원 나들이를 즐겼다. 다중이용시설 폐쇄령이 내려진 날 센강 공원, 뤽상부르 공원 등 파리 시내에 있는 공원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 날씨가 좋지 않은 파리에는 간만에 해가 떴고, 사람들은 마침 떠오른 햇빛을 만끽했다.

물론 마냥 평화로운 주말은 아니었다. 주말 동안 프랑스에서는 출처 모를 소문이 나돌았다. “곧 군대를 동원해 외출·이동을 금지하고 국경을 봉쇄할 것”이라는 소문의 출처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사돈의 팔촌 등’이었다.

‘카더라’지만 소문의 효과는 컸다. 마트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시작됐다. 파스타면과 소스, 물과 휴지 등을 사는 행렬이 이어졌다. 사재기를 위해 마트 앞에 50미터 넘게 줄을 서는 등 혼란이 가중됐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을 권고하는 중이며, 처방전 없이는 일반인에게 마스크를 판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주말부터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가던 친구를 한 현지인이 붙잡고 구매처를 묻는 일도 있었다.

사재기 당한 국제기숙사촌 인근 마트
사재기 당한 국제기숙사촌 인근 마트

외출 자제령과 국경 봉쇄령, 파리에서 표류 = 결국 마크롱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16일 오후 8시 ‘외출 자제령’과 ‘국경 봉쇄령’을 내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전시상황에 놓여있다(Nous sommes en guerre)”며 경각심 없는 자국민들에게 훈계하듯 강경한 제재를 발표했다.

소문과 달리 군대가 동원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출 자제령을 어길 시 큰 액수의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며, 불가피한 외출이 필요하면 통행증을 꼭 지참하라는 명령이 함께 떨어졌다. 건강상 필요한 운동, 생필품 구매, 강아지 산책 등이 불가피한 외출 사례로 언급됐다.

현재 거주 중인 기숙사 파리국제대학촌(Cité Universitaire) 학생들 중에서는 절반 정도가 본국으로 귀국했다. 한 독일인 친구의 아버지는 국경이 닫히기 전 차를 끌고 친구를 데리러 오기도 했다. 유럽 국적의 친구들은 짐을 정리하지 않고 상황이 나아지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본국으로 잠시 귀국했다. 잔류를 결정한 우리 기숙사 학생들은 ‘Survivors(생존자들)’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그룹 채팅방을 개설했다.

국경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공항까지 갔지만 다시 발길을 돌려야했던 학생도 있다. 헝가리 국적의 한 친구는 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까지 갔지만 갑작스레 비행기가 취소돼 기숙사로 돌아왔고, 그렇게 ‘생존자들’이 되었다.

혼란은 한국인 학생들에게도 찾아왔다. 프랑스 상황에 대한 뉴스가 한국에 전해지자 부모님들은 학생들에게 돌아오라며 걱정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기숙사에서는 지속적으로 본국 귀환을 권고 중이다. 이에 일부 학생들은 한국으로의 귀국을 결정했다.

다만, 다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파리에 남아있다. 외국인 신분으로 프랑스에 남아있으면 보호를 받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진다고 돌아올 수도 없거니와 다녀온 학기를 취소할 수도 없기에 일단 잔류를 결정했다. 지금 나는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바라며 파리 한 가운데서 표류하고 있다.

외출금지령으로 사람 없는 파리 국제기숙사촌 전경
외출금지령으로 사람 없는 파리 국제기숙사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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