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1만5254건. 5월 29일 임기 만료를 앞둔 20대 국회가 처리하지 못한 계류 법안 건수다. 교육위원회(이하 교육위)는 747건이 계류 중으로 17개 상임위 가운데 9번째로 계류된 법안이 많았다.

본지가 7일 기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대 국회에 접수된 전체 법안 2만4006건 가운데 64%가 계류돼 있다. 법안 처리율이 36%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심의조차 거치지 못한 법안이 20대 국회처럼 많은 경우는 없었다. 계류 법안은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하면 모두 자동 폐기된다.

교육위는 지난 17대 이후 10년 만에 교육 전담 상임위로 부활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입법 실적을 돌아보면 그 실적이 저조하다고 평가될 수밖에 없다. 8일 기준 20대 국회 교육위에 접수된 법안은 총 949건 가운데 가결·부결·폐기 등으로 처리된 법안은 202건에 불과해 약 21%만 다뤄진 셈이다. 이는 전체 평균인 37.9%에도 현저히 못 미친다. 

교육위 계류 법안 중에는 상세내용만 다르고 의안명이 같아,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법안들도 상당수 있어 주요한 법안들을 면밀히 조율할 시간이 촉박하다. 본지는 많은 계류 법안 중에서도 대학과 관련해서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되는 법안들을 먼저 살펴봤다. 이는 21대 국회 교육위의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 = 먼저 ‘교부금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은 서영교 의원안, 윤소하 의원안, 안민석 의원의 세 가지가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의 미흡함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대학등록금 부담은 여전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내 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의 정부 재정부담률은 0.9%로 OECD 평균 1.1%에 미치지 못하지만, 민간의 고등교육 재정부담률은 1.3%로 OECD 평균 0.5%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에 해당 법안은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대와 균형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목표로 세 안이 같은 결의 제안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이 다르다. 서영교 의원안은 GDP의 1.0%를 고등교육기관에 투자하기 위해 내국세분 교부금의 교부율을 단계적으로 인상, 2022년에는 8.4%에 이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소하 의원안에서는 교부금 재원은 당해 연도의 내국세 총액의 10% 규모는 돼야 한다고 발의했다. 안민석 의원안은 OECD 회원국의 고등교육 재정 규모 평균 수준과 국가 재정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5년마다 교부율을 정하자고 발의해 특정 비율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해당 안건과 관련해서는 꾸준한 법제화 요구가 이어져 왔지만 지금껏 일정 지원비율을 정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교부금 확대를 위해 지난해 전국대학노조가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는 1998년 설립 이후 최초다. 또 참여연대와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등 6개 단체도 정부가 ‘반값등록금’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교부금을 손봐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교부금법은 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의 모든 구성원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까지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대와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안정적 재원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라며 “해당 법안이 제대로 다뤄져 고등교육재정의 법률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슈퍼 여당이 “가장 먼저”라고 말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 여당의 총선 압승으로 고등교육개혁 ‘1호 법안’으로 떠오른 것이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다. 총 다섯 안(전희경, 조승래, 유성엽, 박경미, 안민석 의원)이 발의됐고 그중 조승래 의원안이 제안자 45인(더불어민주당 44, 바른미래당 1)으로 가장 많은 의원을 확보했다. 민주당도 이번 총선 공약집에서 “국가교육위원회를 조속한 시일 내에 출범하고 21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교육위원회법을 처리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를 통해 각종 교육 의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장기 교육정책을 논의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20대 국회에서 출범하는 게 목표였지만 야당 반대로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설령 20대 국회에는 처리되지 못하더라도 21대에는 ‘슈퍼 여당’의 힘을 써서라도 실현될 법안으로 보인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초정권적·초정파적 독립기구를 내세우며 국가주도 하향식 정책을 지양하고 관련 기관과 협회 간 협력적 교육 거버넌스 구축을 꿈꾸고 있다. 이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변하는 교육정책으로 인해 쌓인 불신을 해소하고, 급변하는 미래사회 속에서도 교육정책만큼은 장기적·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제안됐다. 

설립 취지는 좋으나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한 고등교육 협회 관계자는 “위원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큰 숙제인데 위원회 안에서도 양극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고, 교육부가 있는데 교육위원회까지 있으면 ‘옥상옥’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 ‘식물국회’ 오명 써도 무더기 처리 No! = 그 밖에도 사립학교법과 관련한 법안들이 산적한 상태다. 사립학교법과 관련해 교원의 해임과 징계의 공정 심의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법안(신경민 의원안), 교육부 장관이 사립대학법인의 외부 감사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부개정법률안(박용진 의원안) 등이 계류 중이다. 또 대학교수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허용하지 않는 교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맞으며 교수노조 설립에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임기 종료가 코앞에 다다른 만큼 여야 의원들 간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의미 있는 법안들은 다음 국회로도 연계되기 때문에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넘겨져서 마찰을 빚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말했고, 방효원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위원장도 “노조 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제도’ 같이 중요한 사안이 개정안에서 빠져버리면 ‘엉터리 법안’으로 1년을 보내는 셈”이라며 무조건 법안 가결을 목적에 두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 정보위를 제외한 16개 상임위의 법안심사 소위 개최 일수는 지금까지 연평균 10.3일을 열었다. 남은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계류안이 어떻게 처리될지 지켜봐야 할 이유다. 또한 20대 국회를 넘긴 계류법안들 가운데 대학 관련 중요 법안들은 21대 국회가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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