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대학지자체상생발전위원장)

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한강희 전남도립대학교 교수

‘팬데믹’(pandemic)으로 통칭되는 ‘코로나19’ 전 세계 확진자 수가 416만명, 사망자가 28만4000명에 이르고 있다. 확진자 기준 치명률은평균 7%대에 이른다. 우리나라 확진자는 하루 10명 안팎으로 내리닫다가 이태원 집단감염으로 다시 30명선을 넘어서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발생 초기 중국 다음으로 위험국가로 분류됐지만 급호전돼 최우수 대처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생활방역 단계로 접어든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국경이 없기에 안심하기엔 이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보건복지부가 국내에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도 강제출국 걱정 없이 무료 검역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면역력이 형성되지 않았고,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시간이 필요하고, 늦가을이나 겨울부턴 2차 대유행까지 예고돼 있기에 시의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이와 함께 감염병에 대한 느슨한 감정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시공간을 따지지 않는 접근성, 치명적 위험성, 재발 가능성 등을 공익광고를 통해 꾸준히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 물론 지나친 혐오 감정을 조성하거나, 인권 폐해를 유발하거나, ‘카더라’식,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유튜버 행위는 막아야 한다.

인류사에 보기 드문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의 국격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개방성과 투명성을 기조로 첨단 모바일 정보기술 능력을 방역기술에 접목하는 의료강국으로 호평받고 있다. 그 디테일은 한국형 진단 키트 대량 생산, 드라이브 스루 진료 방식 도입, 집단 감염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 운영, 고강도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 획기적인 마스크 제작과 보급, 창구를 단일화한 발 빠른 정보공유 등이다.

우리 국민은 위기 상황에서도 생필품 및 마스크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 이는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 사스와 메르스로부터 얻은 교훈, 택배 문화의 일상화, 분단국가 국민으로서 위기 대처능력 등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다. 총선에선 2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역대급 참가율을 기록했다. 그러자 감염 초기 우리를 향했던 각국의 우려와 질시가 사라지고 검사-격리-치료의 선순환 시스템을 배우려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리더역을 자임한 G2 미국과 중국은 물론 경제와 문화강국으로서 위용을 과시하던 유럽 선진국들은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변화와 질서를 요청받는 뉴노멀(new-normal)시대를 여는 키워드는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요컨대 포스트 코로나는 “우리가 아닌 바이러스가 결정할 따름이며, 우리는 다만 이 역병에 대응할 뿐”인 시대로 정의할 수 있다.

나는 K-방역이 성공한 배경에는 한국인 특유의 ‘감수성’(感受性, sensibility)이 저류(底流)하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감수성이란 심리과학적 성찰과 탐색을 빌리자면 인지적(cognitive), 심미적(aesthetic),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적 의지의 총합적 정서로, 현 단계에서 부닥치는 문제적 사건과 상황, 일련의 흐름에 대한 적응 수준을 일컫는다.

한국인에 저류하는 감정선(感情線)인 감수성이 표 나게 드러난 행태는 K-컬처다. 한국어의 랑그와 파롤, 시네마와 드라마 투르기, 팝과 아이돌과 군무, 발군의 스포츠 스타, 푸드와 뷰티, 대중교통 시스템, 한국적 민주주의의 표상인 촛불혁명, 특정 단어로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한국인의 정과 의리, 유교적 아우라가 생활 속에 침잠한 애친경장 의식, 의료복지로 정착한 의료보험 체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들이 문화 전반에 걸쳐 교호(交互)하면서 한국인 특유의 감수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연히 뉴노멀 시대의 당면 과제는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데 있다. 지금 우리 앞엔 K-방역의 자신감에 힘입어 새로운 흐름에 부응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K-감수성을 접목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 뉴노멀 시대엔 거대자본과 거대자원, AI 첨단기술 만이 독립변수가 아니다. 사람들에 다가가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감수성이야 말로 새로운 독립변수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