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령 지음 《듣기의 윤리》

[한국대학신문 조영은 기자] ‘주체와 타자, 정의의 환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 《듣기의 윤리》가 나왔다. 이화인문과학원 교수인 저자 김애령은 공적 공간에서의 말하기와 듣기, 서사 정체성뿐 아니라 서발턴·이방인·환대에 대해, 나아가 주체의 불투명성과 취약성,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정의와 책임과 연대에 대해 숙고한다.

특히 저자 김애령이 오래전 만나 관계를 맺어온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여성들(용산 성매매집결지에서 오랫동안 살고 생활해 온 언니들)에게 어떻게 언어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목소리를 돌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이 책을 썼다.

학술적으로는 은유와 서사 정체성 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계속 탐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타자의 부름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라는 문제, 곧 듣기의 윤리에 대해 숙고한다. 리쾨르, 아렌트, 데리다, 레비나스, 스피박, 버틀러, 아이리스 매리언 영 등 현대 철학의 핵심적인 사유와 쟁점들을 배경으로, 주체의 불투명성과 인간 실존의 취약성 그리고 타자(서발턴)의 ‘말할 수 없음’에 대해 고찰하며, 궁극적으로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주체와 타자 사이의 ‘재현 불가능성’ ‘번역 불가능성’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저자는 ‘정의의 환대’의 가능성, 곧 “타자가 말하지 못한 것,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 그 침묵까지 함께 들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쉽게 예단하지 않으며 물음과 대답을 지속하기를 요청”하고, “우리가 함께 보다 정의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사람들 사이에 등장하기 위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존재들, 혹은 그 말이 들리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듣기의 윤리》에서는 그들을 ‘타자’ ‘서발턴’ ‘이방인’ ‘소수자’ 등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그런데 ‘타자’ ‘서발턴’ ‘이방인’ ‘소수자’ 같은 개념들을 섞어 사용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개념들은 각기 다른 문제를 가리킨다. ‘서발턴’ ‘이방인’ ‘소수자’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우리에게 각기 다른 물음으로 다가온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개념은 결코 고정된 본질 규정이 아니라는 것, 각기 다른 표준화와 경계 짓기의 산물이라는 것이며 이 교차적 경계 짓기 사이에서 어떤 개인은 더 취약해지고 더 주변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어느 만큼은 소수자이며 서발턴이자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못지않게 차이, 분명한 고통의 격차를 예민하게 의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봄날의 박씨/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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