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종 전북창조경제 혁신센터 이사장(전 원광대 총장)

김도종 이사장
김도종 이사장

문맹(文盲) 퇴치운동을 한 시기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문맹률 0%에 이른다. 한글이 배우기 쉬운 글자이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글을 읽는 수준이 아니고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맹퇴치 운동은 이 차원에서 계속돼야 한다. 그런데 글 읽기와 글쓰기할 때만 문해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문해력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은 ‘경계허물기와 융합’의 시대다. 융합과 연결의 시대, 틀과 판을 새로 짜는 시대는 모든 영역에 대한 문해력이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대학도 그렇다. 대학발전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점을 온 국민이 이해해야만 오늘날 대학이 위기를 벗어나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대학문해력(大學文解力, University Literacy)’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총장직을 수행할 때의 경험이다. 대학의 일을 추진하다 보면 국회의원이나 행정부의 장·차관, 고위공무원, 기업인과 언론인들을 만나 협의해야 할 일이 자주 생긴다. 답답한 일은 만나는 분들이 오늘날의 대학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대학교육에 대해서 이해가 적다. 대학교육을 고등학교 교육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대학문맹(大學文盲)인 것은 대학을 졸업한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인 편견은 이렇다. 고등학교는 대학에 진학하는 징검다리이고 대학은 취직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보는 것이다. 대학 졸업장을 일종의 자격증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대학등급제가 제도적으로 존재하고 심리적으로도 존재하게 된다. 무엇을 전공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를 따지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서울 소재 몇 개 대학만을 쳐주는 풍토가 힘을 갖고 있다. 또 학문에 대한 이해도 없다.

고위 당국자의 한 마디 말이 교수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할 무렵으로 기억한다. ‘철학과나 사학과는 서울대에만 있으면 됐지 모든 대학에 설치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사람들은 대학을 그냥 취업 예비학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심각한 오해는 사립대학에 대한 것이다. 정치가나 정부 관리들이 생각하는 사립대학은 이렇다. 돈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를 치장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사립대학이라고 본다. 그러한 사립대학에 무슨 지원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러하니 사립대학이 재정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틈이 없다. 그들에게 우리나라 대학의 75%가 사립대학이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사립대학에서 양성한 인재들이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호소해도 그냥 건성으로 흘려듣는다.

종교재단의 학교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그 종교 돈 많은데 무슨 걱정이냐?’는 것이다. 이런 편견에 설립재단들의 교육적인 열정, 애국적인 포부는 묻혀버리고 만다. 그러하니 사립대학은 부정과 비리가 구조적으로 뿌리 내리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립대학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정책과제로 채택한 배경이다. 사회정의 실현의 주요한 대상으로 본 것이다. 몇 개의 대학에서 불법이나 탈법을 저지른 사례가 있지만 그것이 사립대학 전체를 부패의 늪으로 예단하는 단서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정부는 대학에 대해 시대정신의 생산을 요구한다거나 기초학문이나 과학기술의 차원에서 시대적 과제의 해결을 요구한 적이 없다. 요즘 같으면 코로나19의 예방백신이나 치료제의 개발을 대학들에게 긴급과제로 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회계부정, 인사부정을 감시하고 줄어든 학령인구에 맞춰 규모를 줄이라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소유주 대학’의 한 총장이 자조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10년 이상 총장직을 유지하며 세계 추세를 앞서가는 대학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립대학의 총장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발전계획을 추진할 수가 없다. 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막판에 가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을 행정적이고 법적인 관리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입법부나 행정부는 ’대학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대학 문해력이 없는 관료조직과 국회의원들이 대학 정책을 다루고 있는 답답한 상황인 것이다. 올해 새롭게 출발하는 21대 국회부터라도 대학문해력을 길러주기를 바란다.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대학’이라는 명제, 아니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대학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 대학문해력이 뒤떨어진 조직들이 대학 정책을 세우고 관리하다 보니 대학을 양적으로 줄이자는 것에 집중돼 있다. 학령인구가 감소된 것에 따라 대학정원을 줄이자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합리적인 생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대비할 일이지 정부가 관리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은 우리나라 대학의 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일이다. 나라는 경제적인 발전을 기초로 문화적으로 품격을 높여야 선진국이 된다. 경제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그 과학기술과 문화를 일궈낼 수 있는 기관이 대학인 것이다. 대학을 규제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지로 지원하고 육성해야 나라가 산다.

여기서 중국의 ‘쌍일류(雙一流) 공정’이라는 대학정책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쌍일류 공정이란 ‘자기 대학을 세계 일류를 만들어라. 그 가운데 적어도 한 학과는 세계 일류를 만들라’는 정책이다. 정부가 먼저 지원금을 주고 세계 일류를 향한 지표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투적 정책이다. 그에 비해 우리 정부의 대학정책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의 우리나라 인구정책을 반성해 본다. 산아제한 정책을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생각하고 거의 야만적 수준으로 산아를 제한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 걱정, 국가 경쟁력 퇴보 걱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의 몸집 줄이기, 일부 대학의 회계부정 감사 차원의 정책을 펼 때가 아니다. 새로운 차원의 ‘산업혁명 폭풍’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보라. 대학을 4차 산업혁명, 5차 산업혁명의 기지로 탈바꿈시키는 정책적 전환을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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