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만중씨 “일반대 영문학과 졸업만 남기고 아버지 권유로 기술교육 전환”

한국폴리텍대에서 윤씨 부자와 이상근 교수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버지 윤만중씨, 이상근 교수, 아들 윤반석씨. (사진=한국폴리텍대)
한국폴리텍대에서 윤씨 부자와 이상근 교수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버지 윤만중씨, 이상근 교수, 아들 윤반석씨. (사진=한국폴리텍대)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아버지는 28년간 기술자로 성실히 근무하신 멋진 가장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지도하신 교수님과 함께라면, 낯선 기술 분야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던 윤반석씨는 “기술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윤씨는 지난달 오리온 주식회사 청주공상 설비팀에 입사해, 생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제조 공정에 쓰이는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일을 맡게 됐다.

윤씨는 지방 일반대를 다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자퇴를 결정했다. 그는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선배나 친구들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며 “졸업해도 전공에 맞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윤씨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건 금호타이어에서 28년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윤만중씨였다. 그가 처음 기술을 배운 것은 지난 1991년 한국폴리텍대의 전신인 ‘광주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다. 그곳에서 2년제 과정을 졸업하고, 내리 기술 외길 인생을 살았다.

아버지 윤씨는 아들의 결심이 섰을 때쯤, 폴리텍대 김제캠퍼스를 찾았다. 직업전문학교 시절 자신을 가르친 이상근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윤만중씨는 “내가 배웠던 만큼 아들도 잘 지도해 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상근 교수는 36년간 산업설비 자동화 분야 직업교육훈련에 종사한 전문가다. 해마다 졸업 철이 돌아올 때면, 학생들의 취업 연계를 위해 한 명 한 명씩 이끌고, 기업체로 분주히 뛰어다니곤 한다. 대학 내에서도 이 점으로 이미 유명 인사가 됐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윤씨 부자 외에도 이상근 교수를 찾는 가족 동문 사례가 종종 나온다.

이상근 교수는 “만중씨가 살고 있는 집 인근에 광주캠퍼스로 진학을 권유했는데, 결국에는 내가 설득을 당했다”며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사제 간 연을 이어왔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아들 윤반석씨는 지난 2018년 다니던 영문학 전공을 뒤로하고, 폴리텍대 김제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새내기가 됐다. 광주에서 김제까지 통학에만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탓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며 “생소한 분야다 보니 처음에 고생했는데, 배우는 재미는 남달랐다”고 했다.

노력한 성과가 이어졌다. 2년간 학교생활을 마치고 그는 올해 2월 학점 4.44점(4.5점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위험물산업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증 4개도 손에 넣었다.

“기술에 대한 아버지의 소신과 교수님의 지도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아직까지 직업을 찾지 못한 친구들에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새롭게 무언가를 배워보길 권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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