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집 연암대학교 축산계열 교수

제9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학교육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김은집 연암대학교 축산계열 교수.
제9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학교육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김은집 연암대학교 축산계열 교수.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스승’답지 못한 스승의 모습이 눈에 띄는 요즘이다. 언론 지면을 채운 이들의 면면이 그러하다. 이런 와중에 학생들의 진로를 제 일처럼 고민하고, 자신의 시간을 내어 인생 갈 길을 지도하는 스승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9회 대한민국 스승상 대학교육 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김은집 연암대학교 축산계열 교수는 ‘스승’상이라는 이름의 상을 받기에 적합하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다. 시간은 물론이고, 일평생 일군 재산도 제자를 위해 내어준 그의 실천이 바로 그 근거다.

연암대학교 81학번 출신이기도 한 김 교수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학생들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던 연암대학교(당시 교명은 연암축산원예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또 농업에 종사하면 나라에서 땅을 받을 수 있었기에 농업인의 길을 선택했다. 물질적 지원을 받으며 갈 길을 찾았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학생들에게도 꿈을 가질 기회를 주기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참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때였어요. 돈이 없어서 농업의 길을 선택했고 연암대학교를 갔어요. 그렇게 제 갈길, 목표를 세웠던 것이죠. 그래서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생활비를 주면, 그 학생들이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기회를 얻고 목표를 세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로 상담도 많이 하는데, 말로만 하면 안 되죠. 제가 행동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또 실천해야 학생들도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연암대학교를 졸업한 뒤, 그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생겼다. 하나는 군 제대 후 10년 이내에 양계농장을 꾸리는 것, 그리고 20년 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었다. 1986년 제대 후 이듬해 양계 사업체인 ㈜양지부화장에 취업한 뒤, 돈을 모아 목표대로 1996년 양계농장 ‘유송바이오’를 창업한다. 그 이후로도 11년을 회사에 더 다니며 낮에는 회사 생활, 저녁엔 농장일을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학업의 길도 계속됐다. 한경대 농업경영학과에 편입해 1995년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건국대 농축대학원에서 석사를, 건국대 일반대학원에서 축산학 박사까지 받았다. 그 때가 2004년 8월이었다. 회사에서는 생산이사까지 올랐다. 이 과정을 모두 지나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스승이 그에게도 있었다.

“농장을 차리고 나서 1년만에 외환위기가 왔어요. 필요한 농기구들을 외환 리스로 썼는데, 반환금이 순식간에 늘어났습니다. 망할 뻔 했을 때 도움을 주신 분이 있었어요. ㈜양지부화장에 근무하던 당시 회장님이 자신이 기거하던 집을 담보로 내 주셨어요. 한번도 남에게 보증을 서 주거나 담보를 내어 준 적이 없던 분이셨죠. 아직도 마음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또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제 지도교수님께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교단에 설 길을 열어준 분이기도 하시죠. 지금도 두 분께 종종 연락드리고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오기도 해요. 뵙고 나면 늘 힘이 나는 분들이십니다.”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고 회사 생활에서도 성과를 내며 승승장구했지만, 모든 목표가 이뤄진 순간 그에게 찾아온 것은 공허함이었다. 목표가 있던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 때 새로운 길이 열렸다. 교수, 스승이 되는 길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니, 회사에서 연봉을 올려주진 못하지만 복지 차원에서 주3일만 근무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목표를 다 이루고 나니 새로운 목표도 없고, 출근 날도 줄어들어서 공허한 마음이 크게 왔어요. 열심히 살았지만, 인생을 즐기는 방법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때쯤 지도교수님이 남는 시간에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건국대 대학원과 연암대에서 시간강사를 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2008년 연암대 정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스승으로서의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대학에서 인생의 새로운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세 번째 목표도 찾았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은 키우는 방법을 잘 알았지만, 사람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몰랐던 제게는 노력하는 과정과 학생의 변화가 큰 보람으로 다가왔습니다. 소극적이고 말도 잘 하지 않던 학생들과 자주 대화하고, 연구실 문을 늘 열어놓고 차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면서 그 아이가 달라지는 모습을 봤어요. 또 그 학생이 취업을 하거나 편입학을 해서 박사학위에 도전하기도 하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성취를 맛봤죠. 사람도 정성을 들이면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대학에서 학생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6,7년 정도 남았는데, 그 사이에 저를 대신할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 남은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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