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크루크 지음, 권진아 옮김 《나는 독일인입니다》

[한국대학신문 조영은 기자]20세기는 아이러니의 세기였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 증가세를 보였지만, 동시에 두 번의 세계대전과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 공산당의 숙청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학살당한 시대다.

그리고 독일은 이 두 번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당사국이다. 그런 독일인으로 산다는 것, 그걸 추체험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력에 도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전후 2세대의 독일 태생이면서 현재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노라 크루크의 이 책은 따뜻한 필치의 일러스트들을 통해 그 복잡한 감정의 세계로 안내한다.

‘하이마트Heimat.’ 맨 처음 우리의 존재를 형성하는 장소, 한 세대의 감수성과 정체성이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장소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이 책의 독일어 원제다. 독일인은 독일에서 한 발짝 떨어지자마자 단박에 자신의 근원이자 뿌리이자 고향인 ‘하이마트’에 대해 혼란스러운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국적이 독일이라는 대답에 바로 ‘하일 히틀러’라는 무신경한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 혹여나 대화 상대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가 아닐까 싶어 영어 발음에서 독일 억양을 지우려는 일상적인 노력들. 그들은 괴테나 실러를 낳은 아름다운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조차 갖지 못한다. 독일인들은 11학년 때 이미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을 분석해 자신의 입장을 내놓아야 하고 ‘영웅’ ‘승리’ ‘긍지’라는 단어 사용은 삼가고 최상급은 피해야 하며, 오래된 민요들도 배우지 못한다.

이 책의 초반부에 그려진 독일인으로서의 그 복잡한 내면은 우리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하나하나의 경험을 통해 독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죄의식과 수치심이 마음 한자리를 차지하고 때로는 뿌리를 찾아가는 일에조차 두려움을 느끼는 그들의 정체성에 때로는 연민이 일기도 한다.

20여 년을 외국에서 지내던 노라 크루크는 이제 독일인이라는 부서진 정체성의 조각들에서 눈을 돌려버리지 않고, 진실을 묻고 마주하는 여정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가족들 모두가 함구하는 그 전쟁 동안, 누구나 나치가 될 수 있었던 그 시기 동안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들은 어떤 삶을 택했는지, 어린 군인이었던 삼촌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묻기로 한다. 때로는 그들을 비난하고 때로는 그들의 죄를 면죄 받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노라는 멈추지 않는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속엔 자신의 뿌리에 대해 이런 복잡한 심경을 안고 산다는 건 정말 그녀가 독일인이기 때문일까 하는 처음과는 다른 의문이 피어오른다. 그녀의 감정이 복잡한 것은 다만 독일인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진실과 마주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노라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자기연민은 아닌지 늘 스스로 검열하고, 할아버지가 어쩌면 나치 당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진실과 마주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노라는 죽음을 목전에 둔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리움이 절절한 편지를 보낸 작은 할아버지, 18세에 나치의 병사로 타국에서 목숨을 잃은 삼촌, 이와 대조적으로 가족들의 회상과는 달리 나치당 입당이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행적들을 오랜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다.

이 책은 그렇게 끈질긴 탐색의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줌으로써, 논리적이고 담담한 글쓰기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가족’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수집한 자료와 사진이 콜라주 되고 그림과 일러스트가 더해지며 조금씩 가족사의 전모가 드러날 때, 우리는 그것이 진짜 자신의 뿌리라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 애쓰는 ‘인간’ 노라의 무서운 용기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20세기 최대의 피해자인 유대인으로부터 어떤 용서를 경험할 때, 그 모든 감정을 같이 느끼게 된다.
1977년 독일 출생.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저자 노라 크루크는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한 성찰을 감동적인 그래픽 서사로 구현해낸 《나는 독일인입니다》로 2018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이외의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중 살아남은 일본인 조종사의 생을 다룬 짧은 그래픽 전기 《가미카제》가 있다. (엘리/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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