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집행 기준 개선을 시사했다.

유 부총리는 11일 ‘2020년 제1차 전국 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에 참석, “코로나19 영향으로 유학생이 감소하고 원격수업 운영과 방역 비용이 급증하는 등 대학 재정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가운데, 학내·외 새롭게 발생하는 갈등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대학들의 어려운 재정 상황을 해소하고 2학기 준비를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사업비 집행기준을 정비하겠다. 각 대학이 원격수업 지원과 방역 관리에 사업비를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집행 기준 개선 방안을 마련, 공표할 방침이다.

유 부총리의 발언에 앞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4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비상 교육과정 운영 관련 대학의 다짐과 건의문’을 발표했다. 대교협은 건의문을 통해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 대학과 대교협은 대학의 구성원인 학생들과 격의 없고 충실한 대화를 통해 당면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가겠다. 또한 긴축 재정을 통해 최대한 가용 재원을 확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에게 적절한 장학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뒤 이를 위해 “대학 관련 예산 사용에 대한 자율성 보장을 요청 드린다. 올해만이라도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용도 제한을 해제해 주기 바란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유 부총리의 발언과 대교협의 건의문을 평행선상에 놓으면 교집합과 간극이 뚜렷하다.

먼저 유 부총리의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집행 기준 개선 시사는 대교협의 건의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교육부는 대학과 대교협의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사용 용도 제한 해제 주문에 묵묵부답 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에 유 부총리의 발언은 코로나19 이후 방역 관리와 원격수업 등에 따른 추가 비용 지출, 등록금 수입 감소, 등록금 환불 논란으로 대학의 고민과 시름이 깊어지고 있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반면 유 부총리는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집행 기준 개선의 초점을 원격수업 준비와 방역관리에 맞췄지만, 대교협의 주문은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용도 제한 해제다. 현재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사용 항목은 △인건비 △장학금 △교육·연구 프로그램 개발운영비 △교육·연구환경 개선비 △실험실습 기자재 구입 운영비 △기타 사업운영 경비로 구성된다. 교육·연구환경 개선비는 전체 사업비의 30%까지 사용 가능하다. 교육·연구환경 개선비는 강의실·실험실·실습실 등 사업 관련 교육·연구환경 개선에 쓰인다. 강사 관련 환경개선비도 해당된다.

바꿔 말하면 대학혁신지원사업비는 당초 도입 취지와 무색하게 대학의 자율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사용항목과 쿼터 제한이 있다. 이에 대교협은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용도 제한 해제, 즉 완전 자율을 주문하고 있다.

완전 자율이 불가하다면 일부 개선이 아니라 대폭 개선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교육·연구환경 개선비의 사용 용도를 강의실·실험실·실습실뿐 아니라 학생회관 등 학생복지시설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등록금 환불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교육·연구환경 개선비를 학생복지시설 리모델링 등에 사용할 수 있다면 학생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등록금 환불 요구 대안의 일환으로 대학혁신지원사업비의 특별장학금 사용 허용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학들의 재정난이 극심하기 때문에 등록금 환불은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원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용도를 특별장학금 지급까지 확대하는 것이 나름의 최선책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코로나19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누가 불청객을 환영하겠는가. 대학도, 학생도, 어찌 보면 교육부도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결국 대학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교육부의 몫이다. 따라서 유 부총리의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집행 기준 개선은 신속히 그리고 대학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차제에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성격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이 단기간 성과에 매몰되면, 대학의 경쟁력과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의 목표와 성과는 장기적 비전과 관점에서 수립, 추진됨이 마땅하다.

이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인류의 숙명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제2, 3의 코로나19가 인류를, 대학가를 강타할 것이다. 지금부터 대학들이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인프라 구축과 경쟁력 강화에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바이러스의 침공에도 대학교육은 흔들림 없이 갈 것이다. 유 부총리의 발언이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성격 재정립을 위한 첫걸음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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