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자 70% '20년 또는 불가능'

“통일은 2020년 또는 그 이후”. 대학생들은 남북통일까지 20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통일을 위해서는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뀔 만큼의 ‘넉넉한’ 시한을 둬야 한다는 신중론 또는 단순히 점진적 통일을 주장하는 응답으로 풀이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결과이다. 사회의식 분야 설문에 대한 전반적인 응답이 통일에 대한 기대치가 떨어지고 있음과 동시에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통일’ 보다는 ‘빈부 격차 해소’, ‘국제경쟁력 강화’ 등을 먼저 꼽아, 대학가에서 통일문제가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통일방안의 경우 이 같은 추세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에 속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쌍방 방안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나라의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두 정상이 합의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대결의 냉전질서 종식과 화해 및 협력의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는 세기적인 찬사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의 통일 논의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으로 뒷걸음질 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이상적인 통일방안으로 남․북 정부당국 각각의 방안과 1국가2체제안 등 절충안 가운데 대학생들은 남한 당국의 것에 일방적인 지지를 나타냈다.
‘한민족공동체방안’ 등으로 대변되어온 남한 당국의 통일방안이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이 넘는 다수의 표를 획득함으로써 폭넓은 공감을 얻은 것은 분명한 ‘팩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쏠림현상으로 인해 통일의 두 주체인 남·북 정부 당사자간 절충 또는 민간의 참여를 통한 제3방안의 모색 등 다양한 논의 자체를 무색케 했다는 점이다. 통일을 위한 선행 조건 또한 대학생들이 주장해온 ‘평화협정 체결’, ‘군비 축소’ 등이 뒤로 밀리는 대신 ‘문화·경제 교류’가 단연 앞으로 나섰다.
부산 아시안게임과 경의선 및 동해선 교통로 연결사업 등 ‘특수’를 감안한다면 응답자 가운데 과반수 이상이 문화․경제 교류를 선행조건으로 꼽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확대 논의가 한창인 이산가족 상봉사업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관심 속에 맨 뒤로 쳐졌다. 특히 연말 대통령 선거와 최근 민감한 남북관계를 염두해 두고 실시한 설문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3년간 실시한 조사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통일문제에 대한 대학가의 무관심은 더욱 ‘고착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예의 사회 비판의식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생들이 불신하는 집단으로 매년 지목돼온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가 올해 역시 빅3로 자리를 지켰다. 대학생들은 이들에 대해 사회 지도적 그룹에 분류됨에도 사회적 이익보다는 개인 또는 집단의 당리당략에 치중하는 세력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반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농민과 사회 비판·대안세력 등에는 후한 점수를 줬다. 올해 역시 대학생들이 가장 신뢰하는 집단으로 ‘농민’ ‘시민단체’ 등을 뽑았다. ◇ 통일은 언제쯤=통일이 20년 이내(33.2%)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 응답이 가장 많았으나 통일에 대한 기대치는 최근 3년간 점차 줄어들거나 부정적으로 바뀐 것으로 분석됐다. 통일이 5년 이내(3.7%) 또는 10년 이내(23.5%)에 이뤄질 것이라는 응답이 27.2%에 불과해 2000년 40.6%, 2001년 34.2%와 비교해 볼 때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통일의 시기를 20년 또는 그 이상으로 늦춰 잡거나 아예 불가능하다는 비관적인 입장이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돼 심각성의 정도를 더했다. ‘20년 이내’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답은 지난해(35.2%)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20년 이상(26.4%)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다는 주장 또한 지난해(19.7%)에 비해 증가했다. 무게중심이 점차 ‘20년 이상’으로 옮겨가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수치이다. 통일이 불가능(11.0%)할 것으로 내다본 응답자도 지난해(10.2%)에 비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 이상적인 통일방안은=응답자 가운데 74.2%가 남북의 통일 형태로 남한당국의 통일방안으로 예시한 ‘한민족공동체방안’을 꼽았다. 오히려 지난해(69%)에 비해 지지율이 올라갔다. 반면 북한당국의 ‘연방제’와 절충안인 ‘1국가2체제 통일방식’은 각각 17.3%, 4.5%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지난해 조사결과는 각각의 방안이 20.9%, 6.5%로 집계됐다. 오랜 군사적 대치 상황 아래에서 남·북 당국 일방의 통일방안으로 통일국가를 이끌어내 오기란 힘들다는 논리를 펼쳐온 대학가의 기존 주장과는 배치되는 결과이다. ‘제3의 길’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 통일의 선행 조건=부산 아시안게임에서의 한반도기 응원 열기와 남북 경제통합과정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경의선과 동해선 교통로 연결사업 등을 놓고 볼 때 응답 결과가 예상됐던 대목. 역시 문화 교류(37.1%) 및 경제 교류(21.8%)가 상위에 랭크되면서 응답자 58.9%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또 평화협정 체결(18.1%), 군비축소(11.5%), 이산가족 상봉(9.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큰 변화는 없으나 수치상 약간의 차이는 보였다. 경제교류(18.3%), 평화협정체결(15.2%), 군비축소(8.3%), 이산가족상봉(9.2%)이 공히 근소한 상승세를 보인 반면 문화교류(46%)는 오히려 떨어진 점이 특징. ◇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대학생들은 빈부간 격차 문제 해소(21.2%)를 우리나라의 당면과제 1순위로 꼽았다. 대학생들은 또 국제경쟁력 강화(18.6%), 도덕성 회복(18.3%) 등을 우선순위 앞쪽으로 당겨놓은 반면 정치 민주화(15.9%), 남북통일(13.2%), 지역간 갈등 해소(11.2%) 등은 뒤로 밀쳐놨다.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으레 등장하던 ‘지역감정’과 ‘북풍’ 등의 용어를 감안한다면 다소 의외의 결과이기도 하다. 오히려 도드라지는 것은 2000년 네 번째로 꼽힌 ‘국제경쟁력 강화’가 두 단계나 뛰어오른 것으로 집계된 점. 개인 또는 집단의 경쟁력 강화가 대학가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 우리 사회의 주된 화두와 대학가의 흐름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가장 신뢰하는 집단=대학생들은 사회집단 가운데 농민(27.6%)들에게 가장 뜨거운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는 시민단체(20.1%)가 따랐다. 대학생(11.8%) 또한 10% 이상의 수치를 기록하며 3위에 랭크됐으며 생산직 노동자(7.7%), 문화예술인(7.7%), 교수․교사(7.1%) 등도 이에 근접, 상대적으로 높은 신뢰도를 얻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밖에 군인(3.1%), 법조인(2.8%), 기업가(2.2%), 공무원(2.0%) 순으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10위권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사회 근간을 이루는 생산직 계층과 더불어 제3섹터로 급부상한 시민단체 등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볼 때 큰 변동은 없으나 문화예술인과 교수·교사 집단 간 순위를 뒤바꾼 것과 언론인이 순위에서 탈락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 가장 불신하는 집단=정치인(88.0%)이 가장 신뢰하지 못할 집단으로 지목됐다. 갖가지 비리와 부정의 대명사라는 수식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붙여진 꼴이다. 또 현격한 표 차이를 보이긴 했으나 언론인(2.3%), 기업가(2.1%)가 바로 뒤를 이어 불신대상 주요그룹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밖에 군인(1.3%), 법조인(1.2%), 의사·약사(1.0%), 교수·교사(0.8%), 공무원(0.7%), 대학생(0.6%), 문화예술인(0.4%) 등이 순위에 올랐다. 지난해와 큰 변화는 없다. 한편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이 같은 결과가 상당 부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들이 대선주자 가운데 인물 선택 조건 1순위로 ‘깨끗함’을 꼽은 것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