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선 지음 《고요한 인생》

[한국대학신문 조영은 기자]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신중선 소설 《고요한 인생》이 나왔다.

‘고요한 인생’ ‘아들’ ‘언니의 봄’ ‘언더독’ ‘낮술’ ‘아이 러브 유’ ‘그 집 앞’ 까지 7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모양새로 거리를 떠돌며 실패와 절망의 서사들이 가족의 이름 아래에서 먼지처럼 피어오른다. 바깥잠을 부러 자며 서울 거리를 배회하고(‘그 집 앞’), 새벽마다 채팅창에서나 존재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영업을 하긴 하는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지 모호한 술집 앞을 서성인다(‘아이 러브 유’). 주소도 없는, 재개발도 비켜간 그 집에 대한 기억도, 이십 년을 떠돌다 돌아온 아버지의 구두에도 뽀얀 먼지가 함께한다(‘아들’). 먼지 속에 살아가던 인물들은 예식장에서 축의금 봉투를(‘언더독’), 서점에서 책을(‘그 집 앞’) 어설프게 훔쳐 내기도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하는 ‘2018년도 2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신중선 작가의 전작(前作)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에서도 ‘삶의 무게와 침묵’ ‘고요한 잔혹극’ 등의 열쇠 말로 해설된 바 있다. 신작 《고요한 인생》에서도 그런 관점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고요한 인생》 속 아이들은 아이여도 아이 같지 않다. ‘아들’의 여자아이는 아이답지 않은 ‘짐짓 어른스런 말투’로 아들을 대하고, ‘고요한 인생’의 수은은 노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은 아이에게 아이다움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시선이 머문 가난의 모습은 그렇다. 가난 탓이라기보다, 이들이 부모에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아들’의 아들은 한 번 실수로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고요한 인생’의 아이는 부모가 원치 않았던 아이였다. 그리도 험한 날씨였던 날 태어났고, 그때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사느라 집에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던 날 무렵만 되면 몸이 붓고 아파온다. 원죄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의 존재가 희망이거나 축복이지만은 않은 암울한 현실이다. ‘아들’의 엄마를 죽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아버지의 육체까지 망가뜨린 아들은 단 한 차례도 행복하고자 희망한 적이 없다. 희망과 기대 속에서 맛본 좌절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아예 희망 자체도 부재했다.

‘언니의 봄’의 난희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이사를 갔다. 난희언니에 대한 식구들의 부채의식은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게도 했는데, 화자인 셋째딸도 난희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사건당일로부터 반년 정도 전쯤’이었으니 이들 가족에게도 ‘함께함’의 시공간은 거의 부재했다. 난희언니가 재력 있는 형부를 만나 결혼하는 동안 가족은 그들의 가난을 난희의 결혼으로 극복해 보려 했을 뿐이었고, 난희언니의 집안이 점차 어려워졌을 때에는 그들 각자 아파트를 사고 팔면서 재력을 키워갔고, 피부 관리에 공을 들이면서도 정작 난희언니의 상태에는 무관심했다.

《고요한 인생》에서 시간과 공간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함께함’이 소거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물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뽀얀 먼지 속에서 독립적인 개체들이 각자자신의 고뇌의 시공간을 채울 뿐이었고, 그 속에서 관계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남겨진 아이들은 아이다운 시간을 얻지 못한 채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다시 보내고 있다. (내일의 문학/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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