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업 166만명 40만명은 '그냥 쉰다'
대다수 기업 공채 축소에 면접도 줄어
공무원 시험 준비 10명 중3·공기업 희망자 증가
워라밸과 고용 안정성까지 추구
사명감 없는 공직 선호는 '국가적 손실'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 시급

경찰 공무원 시험 대비 수험서와 노량진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들 (=이효영 제공)
경찰 공무원 시험 대비 수험서와 노량진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들 (=이효영 제공)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한국의 유일한 자원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특히나 청년층은 나라를 막론하고 그 어떤 연령대보다 역동적인 도전 정신을 가지고 사회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 한국 청년들은 생동감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야말로 ‘취업 보릿고개’를 넘는 셈이다.

통계청은 7월 말 ‘2020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학교를 졸업하거나 그만둔 뒤 일자리를 못 구하거나 다른 이유로 일하지 않는 청년층(15~29살)이 166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40만명은 그냥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통계를 주기적으로 집계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최대치다.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지난해보다 9만명 늘어 80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자료 자체에는 ‘코로나19’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실제로 코로나 이후 취업시장이 위축된 건 사실이다. 10대 그룹 중 5곳만 신입 공채를 진행했고, 각종 자격시험이나 공무직 시험이 미뤄져 취업준비생들이 늘 수밖에 없었다.

김승주(연세대·4)씨는 “취업이 쉽지 않을 거라 예측은 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면접 보는 인원도 눈에 띄게 줄어 기회 잡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의 감염성 때문에 기업들은 대면 면접 인원을 최대한 줄이는 쪽을 택하는 분위기고 인턴 자리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비대면 면접을 시행하는 등의 채용 움직임도 있지만, 예년 같지 않다.

■ ‘공시족’ 강세 여전, ‘사오정’(4050 정년퇴직) 피하는 대표 직업군= 취업준비생들의 취업 준비 분야로는 공무원이 10명 중 3명(28.3%) 꼴로 가장 많았다. 교원임용(4.3%) 준비생과 고시 및 전문직(8.1%)에 속하는 공무직 준비생까지 더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직업 안정성을 고려할 때 공무직만큼 안정적인 직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반기업체(24.7%)가 뒤를 이었다.

이제 마지막 학기를 앞둔 신제연(연세대·4) 씨에게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를 묻자 “미래에 대한 리스크(Risk)가 그나마 적은 직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연 씨는 아직 뚜렷한 진로를 설정하지 않았지만, 그도 한때 ‘안정적’인 공무원을 염두에 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노력을 보고 있자면 ‘저렇게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적성에 맞는 다른 길을 찾고 있다.

졸업 유예 중인 K씨는 사기업 준비를 1년하고 지쳐 9급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공무원을 하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이번 정부 들어 공무원 채용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S대를 다니는 본인이 9급을 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받게 될 주변 시선이 두려워 조용히 준비하는 중이다.

■ 지원자 증가 속도는 공기업이 1등=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직업군 1위는 공무원일지라도, 지원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부분은 공기업이다. 공무원이 예년보다 2.4% 가량 지원자 수가 준 것에 비해, 공기업 지원자는 4%가 증가했다. 이는 취업시험 준비 분야 중에서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김영주(숭실대·4)씨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장학재단 같은 공기업을 준비하고 있다. 영주씨는 “공무원의 경우는 합격하지 못하면 준비 경험으로 다른 분야에 지원하기 어렵다”는 점을 큰 리스크로 보았고, “공기업의 경우는 임금 수준도 높고, 직업 안정성도 높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방면에서 공무원보다 자기 적성도 살리면서 워라밸과 안정성까지 추구하고자 하는 지원자가 공기업에 몰리고 있다.

또 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난 이유로는 공기업 일자리 증원 추세를 들 수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2년까지 공공기관 일자리 2만6000개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올해 2월 발표한 ‘2018년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공기업 일자리는 35만4000개(14.5%)로 전년 대비 7000개(2.1%)가 늘었다. 여기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실현되면서, 공기업 취준생 증가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 유동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공부문 인기는 이해돼= 청년들이 안정성을 최고로 한다고 혀를 찰 수만은 없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발 인력감축은 현실이 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 이후 해고 경험 직장인(631명)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기업 재직자 해고자 비율이 11.5%에서 13%로 늘었다. 기업이 제시한 정리해고의 최대 사유는 ‘코로나 여파에 따른 경영난’이다. 코로나 이전의 해고 수치가 30%라면 코로나 이후는 42.7%로 급격히 올랐다.

한편, 기업규모별로 해고 방식에도 차이를 보였다. 대기업은 ‘권고사직’(33.3%) 비율이 높았지만 중견기업은 ‘부당해고’(39.2%)가, 중소기업은 ‘정리해고 및 구조조정’(34.6%) 비율이 최다였다. 사실상 기업 취업을 고려할 때, 대기업이 아니면 임금은 고사하고 일자리 보전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숭실대 류진호 경력개발센터 팀장은 “학생들이 공무직을 선호하게 된 건 한국 사회 자체의 문제라고 본다. 시대적인 상황이 만든 직업관이고, 이는 생존 문제와 직결되기에 안정성을 추구하는 걸 학생 탓만 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상학 동양대 공무원사관학교 원장은 “생애 총소득으로 따질 때 공무원과 공기업 급여 수준이 기업에 뒤지지 않고,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청년들이 현재 청년들의 부모 세대로 접어들면서 자녀에게 안정적인 공무직을 권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 공무원을 단순히 ‘일자리’로만 여겨서는 안 돼= 이효영씨(국민대 졸업)는 “전공인 공법학에서 형법을 공부하며 흥미를 느꼈고, 적성에 맞춰 경찰직으로 진로를 정했다”며 “위급한 상황을 초기에 잘 대응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정의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공시생 규모 추정 및 실태 연구’(2018, 김향덕·이대중)에 따르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동기로 직업 안정성은 54.5%, 안정된 보수는 21.3%지만 ‘국가봉사’ 응답은 2.9%에 그쳤다. 2020년에도 이러한 추세는 유효하다.

이 원장은 “책임감과 사명감 없이 그저 안정적인 일자리로만 공무직을 생각한다면 국가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학생성공센터장(교육학과 교수)은 “청년들의 진취적인 도전정신이 사라진 자리에 자리 잡은 공직 선호 분위기는 나라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도전 북돋는 적극 지원과 좋은 일자리 마련해 ‘고용 훈풍’ 조성= 결국 이 같은 고용한파는 양질의 일자리와 다각도의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업이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면 자연히 공무직에 대한 선호도는 낮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사회안전망 강화 부분에 필요한 공공부문 일자리 증가는 필요하다”면서 “고용은 공무원과 공기업 일자리가 증가한다고 사기업 일자리가 늘지 않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정부가 정책적 의지를 띠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의 적정 임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복지를 보장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나 좀비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구가톨릭대 이영우 해외취업지원팀 팀장은 "(정부의) 취업률 조사는 명확한 조사과정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조사기관으로서 직시하고 알려줄 의무가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다각적이며, 유기적 지원방안을 유관기관 모두가 고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학의 교육과정 개편과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상호 보완체계를 구축해 대학생들의 공직편중 현상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배 교수는 “청년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롤모델을 끊임없이 제시함으로써 도전의식을 높이고, 대학이 지닌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실패’를 할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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