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무조건 '고고익선' / 채용자 "점수<영어<실무경험자"
토익 '변별력' 논란은 꾸준히 제기되지만 '가장 인기 많은 시험'
코로나19 장기화로 꽁꽁 언 채용시장 속, '정량 성적'에 집착하는 현상 발생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한국 사람으로 친다면 토익은 만 38세 정도다. 곧 불혹의 나이에 다다르는 토익은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건이 돼버렸다. 지원하는 직군마다 요구하는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높을수록 좋다는 ‘고고익선’ 분위기는 여전하다.

■ 토익 국내 도입 이제 곧 40년, ‘기본 스펙’의 대명사가 ‘자격 요건’이 되기까지= 박경진(강원대3) 씨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향후 진로에는 영어를 많이 쓰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도 “글로벌화라는 이름 아래 안 할 수는 없는 분위기에다가, 졸업요건에도 그리 높지 않은 점수지만 제출해야 해서 할 수밖에 없다”라고 씁쓸해했다. 토익은 영어나 경영 관련학과에서 졸업요건으로 제시됐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별히 과가 영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도 졸업요건 충족으로 600~900점 선의 점수를 요구하는 학교들이 많아졌다. 그 영향력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입사원 채용에서 공인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데 이때 토익은 토플, 텝스, 아이엘츠보다 압도적으로 시장 우위를 점하고 있다.

거기다 2017년부터는 7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서 영어 과목이 토익, 토플, G-TELF, 텝스 등의 사설 검정 기관에서 치른 시험으로 점수를 대체할 수 있게 됐다. 2021년부터는 7급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도 적용된다. 2017년 인사혁신처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생활안전분야 추가채용 제외)들의 영어 성적 제출현황에 따르면, 전체 영어 성적을 낸 응시자 2만4437명 중 91.2%인 2만2287명이 토익 성적을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익의 점유율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무원 선발에 사기업 소유의 영어시험이 대체되자 ‘취준생에게 비용전가’, ‘지엽적인 공무원 영어 시험보다는 나아’라고 하는 상반된 의견이 있다. 당시 인사혁신처장이었던 김판석 연세대 교수는 공무원 시험 개편안을 두고 “토익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안 되면 민간기업이라도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 ‘고시낭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교단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영돈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사실 공무원 영어는 변별력을 위해 아주 지엽적인 부분에서 스무 문제를 내 왔다”라며 “영어는 토익 등의 공인 성적으로 대체하고 업무 적합도를 반영하는 다른 과목들을 준비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9급 공무원 영어 시험도 공인 성적 대체를 바라는 분위기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토익의 경우는 현재 700점(외교영사직 790점)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7급 공무원 채용에 응시 가능하다. 

■ 토익은 ‘지위’에 걸맞은 역할하고 있나= 그렇다면 토익은 영어 실력을 증명하는 객관적 지표이자

대표성을 지닐까. 분명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는 전문 시험 개발 기관으로 전문 문제 개발인원과 평가위원들이 활동 중이다. 한국TOEIC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토익 응시자 평균성적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토익을 시행하는 49개국 중에서는 17위이고, 아시아에서는 2위(673점)다. 아시아권 1위 국가가 필리핀(727점)인 것을 고려할 때 한국은 결코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시원스쿨랩(lab) 조사에 따르면 아이엘츠(IELTS)는 한국은 주요 40개 국가 중 30위(아카데믹)와 38위(제너럴)로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한국 응시생들이 미국영어 위주의 영어와 토익이라는 특정 시험에만 몰려 일어난 현상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문제 풀이 스킬(skill)의 승리가 아니냐는 소리와 학생 실력 향상에 따른 성적 인플레 때문에 ‘영어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변별력 없는 시험’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즈음, ETS는 2016년 ‘신토익’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평균 성적이 잠시 하락하며 변별력을 확보하는 듯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이른바 ‘억지스러운 문제’가 는 것 같다는 현장 평가를 받고 있다.

택틱스 어학원에서 RC를 강의하는 정희동 강사는 “포맷을 통해서 난이도를 조정하는 시점은 지났다”고 분석했다. 정 강사는 “질문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이 늘고, 자연스러운 대화 맥락에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특수한 상황을 가정하는 경우가 응시생들을 당황케 한다”라고도 말했다.

또 토익 점수가 높다고 해서 ‘영어를 잘한다’라는 인상을 얻기는 쉽지 않다. 토익 스피킹(TOEIC speaking)이나 오픽(OPIc) 같은 말하기 시험 성적을 따로 취득해야만 ‘말하기 능력’도 갖춘 지원자가 될 수 있다. ‘토익 900인데 말 한마디도 못하는 지원자’가 많아지면서 시험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이를 보완하는 시험까지 응시인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토익에 대한 ‘오해’라는 측도 있다. 이희경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토익 자체가 비즈니스 리스닝과 리딩 능력을 보는 시험인데 말하기 능력까지 평가 못 하냐고 묻는 건 시험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문제 질도 괜찮은 편”이라고 평했다. 다만 이 교수는 “학생들이 특정 시험에만 적응하고 노출돼, 비즈니스 범주를 벗어난 텍스트는 어려워하는 경향은 있다”며 변별력과는 또 다른 문제를 제시했다.

한 대형 서점에 마련된 토익/토플 관련 서적들
한 대형 서점에 마련된 토익/토플 관련 서적들

■ 코로나19 시대, 취준생의 현실 문제로 다가온 토익 응시료= 정기접수 기간 44500원, 특별추가 기간에는 10% 비싼 48900원. 토익은 다른 영어 시험보다 응시료가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쓰기와 말하기 부분의 능력이 측정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마냥 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 특히나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으로 취업시장이 정체된 가운데, 취업준비생들의 주머니도 가벼워지면서 시험 응시료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나마 대학에 재학 중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학교에서 외국어 능력 향상을 명목으로 응시료 지원이 꽤 나오기 때문이다. 조병윤 삼육대 취업진로지원센터 토익운영실 담당자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모의토익의 기회도 제공하고, 토익이나 토익스피킹 같은 공인 외국어 시험 강의를 무상 지원하며 교내 특강에서 출석률 90%만 넘겨도 정기 시험 응시료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외국어 시험 경비에 대한 지원을 다각도로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오르는 토익 응시료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국내 토익 응시료는 2000년 초 28000원이었는데 일부 문제 형식이나 패턴 변경이 있을 때를 기점으로 꾸준히 가격 상승 곡선을 그리다 2012년에 4만원 선을 넘어섰다. YBM 한국토익위원회(이하 토익위원회)의 말처럼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다고 해도 같은 기간 토익 응시료 누적 인상률이 61.5%라면 물가 상승률은 그보다 낮은 46.7%다.

토익 응시자 수는 2010년부터 200만 명을 넘겨 ‘대세’임을 입증했다. 2014년 이후 토익위원회 측에서 응시자 규모를 공개하지 않지만, 크게 줄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도서·강의 판매를 제외한 순수 응시료 수입만 890억 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재료비·인건비·장소 대여비·개발비 상승 등을 반영했겠지만, 일본이 같은 시기에 문제 패턴 개정을 했음에도 응시료를 올리지 않았다. 토익위원회 측은 응시료에 대해 “시행 국가에 따라 응시료는 조정되고 있어 국가마다 상이할 수 있으며 한국은 저렴한 편”이라고 꾸준히 해명해왔다. 그밖에 시험 성적이 객관식밖에 없는데도 늦게 제공되는 부분과 시험지·답안을 공개하지 않는 문제는 꾸준히 취준생들의 입방아에 오른 주제다.
 

■ 채용자의 변(辯), “토익 말고 영어를, 영어 보다는 직무 능력을!”= “선생님 20점만 더 올릴까요? 890이랑 910은 느낌이 너무 다른데...” 서강대 취업지원팀의 이진호, 이원경 취업지원관이 자주 듣는 상담 내용이다. 얼어붙은 채용시장 속, 어디서 당락이 결정지어지는지 몰라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직무에 대한 이해나, 자신만의 특별한 역량을 갖추기보다 정량 점수를 과도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이원경 지원관은 “기업에서 명확한 채용 기준을 마련해주지 않는 한 학생들의 정량 성적 집착을 멈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고, 이진호 지원관은 “영어는 구체적 채용기준과 별개로 호환도와 범용성이 높기 때문에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기업 채용담당자들은 토익을 비롯한 영어 성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작년 매출 1조를 달성한 패션 액세서리 제조업체에서 10년 동안 인사를 맡아온 A과장은 “해외 영업을 제외하고는 토익 800점 이상이면 당락의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과장은 “적당한 스펙을 갖추고, 실무경험을 지닌 지원자가 매력적”이라면서 “기존 구성원들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본 회사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IT기업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5년 차 B대리는 “IT 관련 실력만 증명할 수 있다면, 성적은 아예 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온라인 리크루팅 정보 제공업과 IT직무 자를 뽑는 ‘잡코리아’의 경우 “경력직 채용 시 경력유사성과 실무능력을 가장 우선해서 보고, 신입의 경우에는 응시자의 각종 경험에 비춘 직무적합성을 검증한다”라고 말했다. 18년 동안 인사 직무를 맡아온 잡코리아 박희옥 책임매니저는 “직무별 채용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채용직무와 상관없는 다양한 스펙을 쌓기 보다는 당장은 원하는 기업이 아니더라도 관련 직무 업무 경력을 쌓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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