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법무법인의 통지를 받았다. 저작물을 불법으로 사용했다는 게 이유였다.

“저작자 소유의 프로그램을 허락 없이 사용한 행위는 저작권 침해이며 민·형사상 조치를 하기 전에 자료의 사실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 날아왔다. 당황스러웠다.

책이나 논문의 내용을 베껴 자신의 글인 양 발표해 표절 시비에 휩싸이는 말은 들어봤지만 내가 이런 일을 당할 줄 몰랐다. 컴퓨터에서 작성한 문서를 PDF 파일로 전환해 인터넷에 올린 자료가 표절처럼,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린 ‘소식지’가 화근이었다. 저작권자의 폰트(글자체)가 자료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용자들의 눈에 잘 띄도록 예쁜 폰트를 검색, 이용한 게 문제였다. 그 폰트는 다운로드를 받을 당시에 무료였고 담당자가 모르는 사이에 유료로 전환됐다.

도서관에서 만든 자료가 ‘글의 내용’이 아닌 ‘글자체’로 저작권 문제가 생길 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타 대학의 지인은 힘들게 합의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저작권을 앞세워 ‘법무법인의 폰트 사냥’이 끊이질 않는다는 뉴스는 진짜였다.

대학에서 '폰트 사냥'을 즐기는 이유가 뭘까. 교내에서 생산하는 기록물이 많고, 저작권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점을 노린 걸까.

홍보자료를 만드는 전담직원이 있지만 각 부서의 안내물까지 지원할 여력이 없다. 학생과 직원이 축제 포스터나 교육생 모집 리프렛 등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다. 위법성을 고려한 검열은 하지 않는다. 이런 허점을 폰트 사냥꾼들이 노리는 것이다.

저작권자가 대리인을 내세워 재산을 보호하듯, 대학도 소명할 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합의 과정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상담을 지원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대리인이 주장하는 폰트 프로그램을 사용한 ‘저작권 침해’인지, 아니면 폰트만 사용한 것인지를 판단하고 협상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법무법인과의 합의 과정은 힘들었다. 대리인이 요구하는 대로 재산권 사용료이든, 패키지 구입비이든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대리인과 학교 관계자의 통화 등 힘겨운 해결 과정을 지켜본 직원은 문제가 된 소식지를 모두 삭제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업무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이 있는 나 역시, 사건을 종료한 후에 삭제한 자료를 탑재하라는 말을 못하고 있다.

저작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마땅히 보호돼야 한다. 반면, 무분별한 저작권 주장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해서도 안 된다. 저작권 관련 교육 이외 법률상담과 무료 폰트를 안내하는 ‘한국저작권위원회’를 활용해 보면 어떨까. 다운받은 자료의 근거를 확보해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도 있다.

무분별한 폰트 사냥은 총 안 든 강도나 진배없다. 조속한 근절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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