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대와 통합 추진 중인 한국복지대 전경.
한경대와 통합 추진 중인 한국복지대 전경.

[한국대학신문 허지은 기자] 지난 15년간 전문대는 13곳이 줄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의 조사에 의하면 2004년 전문대가 158개교였던 것이 2020년에는 135개교가 남았다. 같은 기간 4년제 일반대는 어땠을까. 171개교에서 194개교로 늘어났다. 일반대는 수가 늘어난 사이 전문대는 숫자가 감소했다.

사라진 13개의 전문대 중 7곳은 국립 전문대다. 대학정보공시 기준, 대학 통폐합 현황을 보면 2006년에는 천안공업대학과 청주과학대학이, 2007년에는 원주대학과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이, 2008년에는 익산대학, 2010년에는 인천전문대학, 2012년에는 한국철도대학이 사라졌다.

이번엔 최근의 일이다. 국립 전문대학인 한국복지대학교가 국립 4년제 일반대학인 한경대학교와 통합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한국복지대가 한경대와 통합에 성공하면, 전문대 중 국립대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속의 한국농수산대학만이 남는다.

이처럼 사라졌거나 통합을 논의 중인 8개 국립 전문대의 사례를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모두 ‘4년제 일반대’와 통폐합됐다는 것이다. 성신여자대학교와 통합된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을 제외하면, 모두 국립 일반대와 통합됐다.

■“국립 전문대, 대학 구조조정의 최대 피해자…고민 부족했던 통합 추진” = 그러나 전문대와 일반대는 설립 취지와 교육 목표가 구분돼 있는, 다른 기능의 교육기관이다. 국립 전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원 감축만을 위한 대학 통합 정책이 이유였다고 지목한다.

허영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이후 사립 전문대는 입학 정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국립대학은 통폐합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됐다. 산업의 요구, 필요한 인력 양성에 대한 계획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1990년대까지 대학이 급격이 늘어났다. 당시 재수생이 크게 늘어나는 문제도 심각했고, 이후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대학 수와 정원 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국가 차원에서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문대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해 연구하며 국립 전문대에 대해 조사했던 양한주 한국대학경쟁력연구원 재정운용분석센터장은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편제 정원’을 기준으로 정원 감축 기조를 보였다. 전문대의 2년제 학제를 4년제 일반대와 통합시키면서 편제정원을 유지하면 모집 정원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기에 전문대와 일반대의 통합이 활발히 일어났다”며 “일반 사립대도 같은 학교법인 내에서 통합을 권했으나, 사립대들이 응하지 않았고 국립대밖에 손 댈 곳이 없어 국립대 간 통합이 더 많았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국립 전문대와 국립 일반대 간 통합을 추진하며 인력양성 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2006년 강릉대와 원주대학의 통합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2006년 10월 열렸던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당시 최재성 열린우리당 의원은 “강원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관광통역학과를 폐지하면서 전혀 경쟁력이 없는 여성인력개발학과를 키워놓은 것은 명분이 없다”며 강릉대와 원주대 통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강릉대와 원주대학은 통합안을 마련하면서 원주대학의 관광통역학과 교수 7명 중 관광 전공 교수 2명을 강릉대의 관광경영학과로 보내고, 통역전공 5명과 학생정원 35명으로 미디어 어문학과를 신설하는 학과 통합안을 추진하다 학내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기존의 여성인력개발학과에 교수 5명과 학생정원을 배치하는 안을 새로 마련해 교육부에 제출한 상황이었다.

이는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복지대와 한경대의 통합 과정에 대해, 한국복지대 내부에서 그동안 한국복지대가 갖고 있었던 고유의 교육적 기능을 통합 후에는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본지는 6월, 한국복지대의 한 교원에게서 접한 이 같은 우려의 시각을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한경대-한국복지대학교 통합 진통···반대 여론 여전)

당시 한국복지대 교원 A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경대와 (한국복지대가) 통합하면 결국 장애 학생을 위한 직업교육은 그저 하나의 계열, 특수학과가 되는 것이다. 그런 대학은 이미 있고, 또 그곳에는 대부분 경증 장애인들이 진학한다”며 “한국복지대는 중증 장애인들을 책임지고 교육하는 곳이다. 우리 대학 일부 과의 경우 중증 장애 학생의 비율이 70% 이상에 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일반대와의 통합으로 중증 장애 학생의 직업교육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국가가 고등직업교육 포기…전문대 정체성까지 약화시켜” = 전문대학가에서는 국립 전문대가 일반대와 통폐합된 것에 대해 국가가 고등직업교육을 포기한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국립 전문대가 사라진 것은 국가의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책임을 줄여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직업교육 영역은 교육분야 중에서도 특히 국가의 책임이 강조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의 원동력인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것이 직업교육이고, 개인에게는 사회의 건강한 직업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복지의 의미를 갖는 것이 직업교육”이라며 “국립 전문대는 사학이 운영하기에 재정적 여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반드시 고등직업교육을 통해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분야에 설립된 것”이라며 그 의의를 강조했다.

각 국립 전문대의 특성화 영역을 무시한 채 정원 감축만을 위해 통합이 진행된 것은 전문대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데도 큰 영향을 줬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승근 정화예술대학교 부총장은 “전문대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 없이, 영역이 다른 교육기관과 통합시켰다. 그리고 이는 국가가 고등직업교육기관이 어떤 곳인지 그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전문대와 일반대의 통합은 곧 고등직업교육 고유의 기능을 일반대에 넘겨준 셈이고, 국립대학 간의 통합 추진은 국가가 고등직업교육기관과 학문중심 연구대학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렸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보형 전문대교협 사무총장은 “국립 전문대와 국립 일반대의 통합은 그동안 전문대의 특수성을 모르고 획일적으로 진행돼 왔던 경향이 있다”며 “국립 전문대는 각기 국가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에 대한 직업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됐고 공업, 농업, 수산 등 인력 양성 기능적으로도 특성화돼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보형 사무총장은 “무리하게 통합을 하지 않고 존속시켰다면 전문대 내에서도 국립대와 사립대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상호 발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구조조정 필요하다면 ‘인력양성 계획’ 함께 고려돼야 = 그동안 대학 구조조정은 인력양성 정책과 함께 고려되지 못했던 만큼, 향후에는 이를 보완한 대학 정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잇따른다.

허영준 연구위원은 “직업교육은 곧 인력 양성과 관련된 것으로, 앞으로 사회에 필요한 인력 수요를 전망하고 이에 맞춰 인적자원개발 정책이 이뤄지는 것이 이상적”이라며 “노동시장의 인력 구조와 양성 인력 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지적했다.

남성희 회장도 “직업교육 기관에 대한 정책은 반드시 국가 산업정책과 인력양성 정책에 기반해야 한다”며 “당장 눈 앞의 학생 정원만이 아닌, 투자적 관점에서 대학 정책을 계획성 있게 입안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문제는 교육 수요자들의 학사학위, 일반대 선호 현상이다. 허영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학생, 학부모는 학사학위와 ‘4년제 대학’을 전문대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학의 수와 정원을 조절하는 데 있어 교육 수요자의 의견도 중요한 기준인 점을 생각해 본다면, 학력과 대학 간판으로 대우받는 나라가 아닌 능력으로 대우를 받는 기조가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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