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유신열 고려대 연구기획팀장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전신마비가 된 그레이, 그의 몸에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최첨단 두뇌 ‘스템’이 장착되고, 스템의 능력을 빌려 아내를 죽인 자들을 직접 처단하기 위한 통제 불능 액션이 시작된다. 결국은 모든 것이 그레이 몸 속에 내장된 인공지능 스템이 인간 그레이를 지배하려는 계획이었음이 밝혀진다. 인간 그레이는 스템을 통해 업그레이드됐지만 자신의 통제권을 스템에게 넘겨주고 스템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갔다.

영화 ‘업그레이드’의 내용이다. 영화 속 스템을 사회 조직 생명체로 확장해서 보면, 조직을 숙주로 활용하고자 하는 어떤 것을 ‘사회적 스템’이라 부를 수 있겠다. 사회적 스템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해 자신을 위한 조직으로 만든다.

영화 속 스템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닮았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의 자기 보존 본능에 따라 일어나고, 인간은 유전자의 매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스템이나 도킨스의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그저 숙주일 뿐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이 관점에 당황하게 된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면 내 삶의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것인가?

내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나는 이기적 유전자의 숙주가 될 것이다. 내가 유전자의 숙주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내 삶의 의미는 내 몸 속의 특정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선 정신이다. 정신은 생각하지 않으면 흩어져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조직 생명체도 똑같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조직 생명체가 그저 숙주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한다. 조직의 존재 의미는 특정 부서에서 관리해야 할 업무가 아니고 조직에 내재돼 있는 정신이다. 조직 속의 우리 스스로 각자 생각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사회적 스템은 미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조직 속 가까이에 흔하게 존재한다. 조직 속의 한 부분이 조직 자체를 숙주로 만들고자 하는 위험한 신호는 많다. 하지만 스템 여부를 가르는 경계선, 즉 수단이 목적을 지배하게 되는 지점은 분단된 철조망처럼 분명하게 구분돼 있지 않다. 그래서 조직 구성원은 쉽게 이 경계를 넘어가게 되고, 스스로가 이미 스템이 돼버린 것을 인지하기가 어렵다.

조직의 규모가 비대해지고 전문화될수록 구성원의 스템화 위험성은 더 높아진다. 그것은 조직 속의 구성원이 조직의 큰 목적을 인식하기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구성원인 ‘나’는 조직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편의를 위해 조직을 조종하게 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부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스템화된다. 조직의 운영체계인 시스템 또한 스템화 위험성이 크다. 지금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도 이미 우리가 조직의 빅브라더 시스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각종 규제와 프로그램화된 정교한 시스템은 구성원의 종속을 가속화한다.

회계 등과 전문화된 분야도 마찬가지다. 각 영역이 조직의 근본 목적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고도화돼 간다면 그 자체가 스템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이처럼 스템화된 조직은 서비스 대상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제각각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숙주로서 조직의 생명이 다하게 되면 그 속의 사회적 스템도 함께 사라진다. 이처럼 존재의 의미를 잃어 종말을 맞게 되는 운명을 피하려면 조직에서 ‘종속 지수’ 또는 ‘스템 지수’라도 만들어 관리해보면 어떨까?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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