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

요즈음 나는 우리의 말과 글이 정체성을 잃고 붕괴되어 가는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추석 연휴를 전후해 언론에서는 ‘추캉스’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생각해보니 추석과 바캉스의 합성어였다. 코로나의 여파로 연휴를 호텔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모양인지 그것은 ‘호캉스’라 하고, 혼자 바캉스를 떠나는 건 ‘혼캉스’라 하고 있다. 공식 언론이 공론의 지면을 통해 사설 클럽의 소식지처럼 그렇게 임의로 신조어를 남발해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혼자 호텔에서 추석 연휴를 지내는 것은 ‘혼추호캉스’라 해도 되는 것인가? 언론사 편집권의 횡포 또는 남용 아닌가? 어째서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설립된 국립국어원이나 한글학회는 말 한마디 없는가? 오늘 아침 유력한 모 일간지에도 기사 제목에 ‘턱스크’에 과태료를 물린다 했다. 턱스크란 어느 나라 말인가? 

혹자는 이렇게 말하리라. 급속한 세계화 시대를 사는 오늘날, 선진 외국어와의 언어 합성은 당연한 흐름 아닌가? 역사의 세계화적 흐름에 언어의 쇄국주의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도리어 적극적 자세로 임함이 옳다고. 그래서 더욱 나는 우리 말과 글의 앞날을 염려하면서 주시경의 마친 보람을 대조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마친 보람은 서술어가 아니다. 하나의 이름씨(명사)다. 1913년 배달말글모듬 서울 온모듬(조선언문회 서울 총회)에서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고등과 제1회 졸업생들에게 준 졸업증서를 일컫는 말이다. 제목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내거나 새로 만들어내려는 혁명적 사고와 주체적 노력이 엿보인다. 예컨대 난대(출생지) 난제(출생일) 다나(교과과정) 어른(원장) 스승(지도교사) 등이 그것이다. 원장 남형우는 솔벗메, 교사 주시경은 한힌샘으로 본인들의 이름까지 순수 우리말로 바꿔 놓았다. 혁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마친 보람을 받은 제1회 졸업생 33명의 명단을 훑어보면 최현배 이병기 이용설 윤복영 정충시 현상윤 이병헌 김두봉 권덕규 등 역사적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모두가 이 나라의 개혁과 항일과 독립운동을 이끈 민족적 지도자들이다. 

주시경의 혁신 사상은 그가 수여한 졸업장을 순수한 우리말로 바꿔 부른 실험정신과 새 명칭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익힘주글(익힘에 주는 글) 나남(나와 남, 즉 자타가 공인함) 배혼 보람(배운 보람) 닦은 보람(수료증), 부지런 보람(근면상) 등이 그것이다. 참신한 우리말을 줄기차게 발굴한 셈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한글전용과 풀어쓰기 및 가로쓰기를 시도했으니 이는 분명히 세종대왕도 놀랄만한 혁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오늘날 주시경의 문자혁명은 가로쓰기에 관한한 이미 어느 정도 성취됐다 할 것이며, 풀어쓰기는 각종의 디자인을 통해 한글의 예술성과 함께 그 시동이 걸렸다 하겠다. 문자의 발전은 언어의 발전으로, 그것은 다시 우리의 사고방식과 문화생활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로 조용한 혁명이라 할만하다. 

다만 나의 개인적 소망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1544년)의 자모음 28자 중 소외된 넉자를 다시 살려내어 재활용해서라도 지구상의 모든 언어를 발음 그대로 표기할 수 있도록 개발함으로써 표음문자로서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v,f,θ,ᵣ,ə,ᶅ 등의 발음까지도 정확히 표기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한때 젊은 현역 교수 시절 나는 주시경의 ‘마친 보람’에 감격한 나머지 매 학기 종강할 때마다 서재에 걸려 있던 ‘마친 보람’을 강의실에 갖고 들어가 ‘조용한 혁명’이란 제목으로 종강 특강을 대신하기도 했다. ‘조용한 혁명’은 총포나 민중의 함성으로 유혈과 폭력을 수반하는 ‘시끄러운 혁명’에 비하면 겉보기에 그 성과가 미약하고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 사회의 근본을 바로잡고 문화를 변혁하는 데는 도리어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 1917년의 러시아 멘셰비키 및 볼셰비키 혁명을 비롯하여 1960년의 한국 4·19혁명, 1961년의 한국 군사혁명 등은 모두 포성과 총성, 탱크의 굉음과 민중의 외침 등을 수반한 시끄러운 혁명이었지만, 그 역사적 성과는 체제변동과 권력의 재편성 등의 제한성과 한시성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스위스 페스탈로치의 교육혁명, 덴마크 그룬트비히의 인간 개조와 국토 개혁 등은 진실로 조용한 혁명으로서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신세계를 만나게 했다. 이 반열에서 나는 주시경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며 그 산 증거로 ‘마친 보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혼추호캉스냐? 마친 보람이냐? 우리의 갈 길은 어디인가? 만약 이 시점에서 세종대왕, 주시경, 특히 ‘조선민족 갱생의 도’를 쓰신 이 시대의 대표적인 한글학자 최현배님이 살아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 것인지 한글날을 맞아 도리어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 '살며 생각하며'는 대한민국 저명인사의 인생 스토리와 철학, 경험담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번 '살며 생각하며'에는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전 교총 회장)이 함께 합니다.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와 미국 존스 홉킨스대에서 정치학석사학위를, 연세대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처장,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고 한국정치학회 회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건국대 총장, 호남대 총장, 교육부 장관 등을 지냈다. 현재는 연세대 명예교수와 단국대 석좌교수 등을 맡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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