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맡은 인물에 최대한 몰입하여 아예 그 인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 배우가 그 인물이 되어버리면 그건 더 이상 연기가 아니다. 그 인물도, 배우도 보이지 않게 된다. 배우와 인물의 거리에 대해 이같이 상반된 입장을 보여 주는 오랜 논쟁에서 연극 <배우 우배>는 출발하고 있다. 주인공 '우배'는 연기력을 인정 받은 훌륭한 배우이다. 하지만 하나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연기한 인물도 사라진다는 데 상실감과 혼란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 연기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때 그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아예 그 인물이 되어 버리라고, 그 인물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제갈조라고 이름의 사기꾼이 이끄는 대로 우배는 공연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을, 아니 아예 공연의 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 인물의 세계로 들어간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 가는 과정을 연극 <배우 우배>는 우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코믹한 인물들과 풍자적인 상황들은 그 무게감을 웃음으로 덜어 준다. 우배가 하나 둘 장애를 딛고 마침내 실존 인물 송준호가 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다시 송준호로부터 우배 자신으로 돌아 오는 과정을 웃으며 따라가다 보면, 정체성을 찾기 위한 우배의 고뇌는 연극을 보는 우리 자신에게 자연스레 투영된다.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팔면서 속으로는 장미 한 근, 백합 두 근 반을 판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과연 푸줏간 주인인가, 꽃집 주인인가. "인생이라는 희비극에 우린 모두 배우라고!" 작품이 지닌 여러 가지 상징은 공연을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거울에 비춰진 글자 같은 배우와 우배. 두 글자는 같으나 결코 같을 수 없는 운명이다. 또한 우배와 제갈조의 만남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는 여장 남자 가수는 그 자체로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한다. 이 작품이 지닌 우화적인 성격은 이미 작가와 연출가의 면면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북어대가리> <느낌, 극락 같은> 등 유수의 대표작을 지닌 작가 이강백의 작품을, <김치국씨 환장하다>와 <돐날> 등 섬세하면서도 우화성 강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 온 최용훈이 연출하였다. 최용훈 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배우로서의 답은 극에서 제시되지만, 진정한 답을 찾는 건 관객 자신의 몫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다. 극단 배우세상의 대표인 김갑수 씨는 "최용훈 씨의 작품은 특히 장면 장면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작품이 가진 다소 난해한 상징성을 그는 구체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덕진, 신경아, 전진기, 김갑수 등이 출연하며, 극단 배우세상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름 그대로 배우들이 주축이 된 배우세상은 98년 창단 이래 지금껏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창작극을 고수해 오고 있다. 10월 2일~11월 9일, 강강술래 극장. 문의:배우세상 (02)987-4829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